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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영빛차 등록일: 24-12-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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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
나는 중학교 2학년 딸이 한 명 있다. 사위는 세 명 있다. 두 명인 줄 알았는데 어제 잠자리 수다에서 세 번째 사위를 소개받았다.
1번 사위는 박병찬, 웹툰 <가비지타임>에 나오는 농구선수다. 2번 사위는 김기려, 웹소설 <이세계 착각헌터> 주인공인데 영혼은 외계인이고 육신은 지구인이다. 3번 사위는 웹소설 <괴담출근> 주인공 김솔음이다.
내가 중학생일 때는 각반에 서태지 마누라가, 고등학생일 때는 각반에 강타 우리은행전세자금대출방법 마누라(H.O.T)가 두세 명씩 있었지만 덕질 경험이 없는 나는 그저 신기한 취미로만 봤다. 자칭 연예인 마누라도 신기했지만 소설 주인공 마누라로 칭하는 것 또한 신기하다. 연예인 스케줄에 맞춰 새벽부터 쫓아나갈 일 없으니 다행이다 싶어서 적당히 호응해준다.
<가비지타임> 팝업 스토어가 성수동에서 열린 적이 있다. 인스타로 입장 예약을 법인대출 해야 한다. 지난번에 늦장부리다가 예약 자체를 못해서 아이가 두고두고 서러워했다. 이번에는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 내가 피시방에서 대기하다가 광클릭으로 입장권을 얻었다.

거저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낸다는데도 입장부터 이렇게 까탈스러운 게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굿즈의 세계라고 했다. 팝업 스토어의 대형 한국장학재단 전환대출이란 판넬 앞에서 아이는 매우 기뻐했고 나는 매우 헷갈려했다. '그 애랑 저 애랑 등번호만 다르고 얼굴은 같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가출확인서
▲ 1번 사위 팝업 스토어 저 앞에서 손 들고 벌 서는 게 웹툰 장면 설정이래서 따라해봤다. 아이가 무척 신나했다


ⓒ 최은영




이번에 간 카 카이스트 대학원 페는 2번 사위가 하는 곳이다. 다행히 입장이 까다롭지는 않다. 대신 주말에는 사람이 많다기에 평일에 갔다. 아이가 보고싶은 전시회가 있대서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낸 김에 그 카페까지 들렀다 오기로 했다.

입장 시간이 좀 남았길래 근처 올리브영에서 놀고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떤 아가씨가 테스트 향수를 쏟듯이 뿌리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담배 냄새 풍기면서 수업 들어갈 수 없잖아. 올영 들렀다 가는 길이야."
그 사람이 나가자마자 아이가 하는 말, "나는 던전이 열렸을 때 S급 헌터로 활동해야 하니까 담배는 안 피울 거야. 김기려도 환생한 인간이 골초라서 이런저런(고유명사 같은데 내가 못 알아들음) 능력을 못 쓰거든."
음,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담배 안 피운다고 하면 고맙기야 하다. 그 이유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2번 사위와 관련된 뭔가라는 건 알겠다. 사위가 좋은일 했다고 치자.

1번 사위의 팝업 스토어에서는 별로 고른 것도 없는데 6만원이 나왔다. 우리 앞뒤로는 10만 원이 기본이었다. 본인 새뱃돈 모아둔 걸로 쓰는 거지만 그정도로 끝내준 아이가 고마웠다. 2번 사위 카페에서는 2만 5천 원을 썼다. 이대로라면 3번 사위도 덜 쓸 분위기이긴 한데 아직 행사 소식은 없다. 3번 솔음 사위님, 장모 부탁인데 지갑 좀 지켜주시죠?










▲ 2번 사위 스탠딩아크릴 굿즈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2번 사위님이 2만원이다


ⓒ 최은영




사춘기 아이와 공감한다는 건 어른의 무게를 잠시 내려두고, 그들의 세상에 발을 들이는 일이다. 어른인 척 의젓한 얼굴을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 같은 호기심과 불안을 품고 있는 게 중학생이다.

그래서 나는 낯선 문화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가비지타임>을 읽으며 농구 코트의 숨 가쁜 열기를 상상하고, <이세계착각헌터>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왜? 하면서도 조금씩은 따라간다. 공포물은 원래 못 보는지라 출근 괴담은 밤마다 아이 이야기로만 듣는다. 잘 못 알아들어도 "어머, 정말? 끝내주네"를 적절하게 돌려막으며 리액션한다. 그러는 순간 우리는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진다.
나는 농구도, 전투도, 괴담도 싫다. 나는 소설 <스토너> 같은 밋밋하고 조용한 이야기가, <코스모스>처럼 광활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좋다. 이걸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아이가 좋아할 리 없으니 내가 나 좋은 걸 포기한다.
이 포기는 내가 아이와 같은 세상을 바라보려는 작은 몸짓이다.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욕심 대신, 그저 함께 웃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로 남고 싶다. 그런 내 곁에서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아이가 귀엽고 고마워서 모르는 이야기에도 나는 자꾸 머리를 들이민다.
모르는 세계를 기웃거리다 보면,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농구의 빠른 속도감이 지루한 내 일상에 자극을 주고, 전투 속 주인공의 용기가 내 안의 겁쟁이를 일깨운다. 괴담 속 낯선 공포는 삶의 불확실성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묘한 재미를 준다.
아이를 위해 시작했지만, 그 세계는 어느새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아이와 같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몸짓은 결국 나를 더 유연하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이 시절이 길지 않을 걸 알기에, 나는 오늘도 아이가 열어둔 문틈으로 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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