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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채현채
등록일: 25-10-0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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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고든 ‘조력사망’
풍광이 끝내주는 스위스 호숫가로 친구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 일생 애증관계였던 친구와 마침내 화해했으니 삶에 미련도 없다. 밸브를 열고 약물이 주입되니 살짝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을 꼭 잡아주는 친구의 ‘고생했어’라는 위로와 함께 세상을 떠난다.
연명치료 중단 존엄사보다 확장된 개념
창업지원최근 큰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마지막회는 스위스 안락사 여행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사진 넷플릭스]
장안의 화제인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의 엔딩이다. ‘마지막 회는 조력사망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했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스위스 안락사’ 여행 안내가 학자금 전환대출 이자 디테일하다. 조력사망은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수 있을까. 최근 미디어가 앞다퉈 다루고 있는 소재다. 100세 시대에 ‘웰다잉’이 화두가 되면서 판도라의 문이 열렸다. 올 초 SF 작가 남유하씨가 모친과의 스위스 동행기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은중(김고은)과 상연(박지현)이라는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사랑 인천우리캐피탈 과 미움의 대서사가 아름다운 엔딩을 맞을 수 있는 건 말기 암에 처한 상연의 마지막 선택 때문이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갈등했지만 서로에 대한 동경과 경쟁심 덕에 각각 영화 제작자와 드라마 작가로 성공했음을 인정하며 스위트룸에서 회포를 푸는 마지막 나날이 썩 낭만적으로 보인다.
sc상호저축은행대출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사진 각 제작사]
이 쿨한 이별은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룸 넥스트 도어’에서도 본 적 있다. 성공한 작가 잉그리드(줄리안 무어)가 옛 친구인 종군기자 마사(틸다 스윈튼)의 설정비 말기 암 투병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은중과 상연 같은 애증은 없어도 한 남자를 ‘계승’한 과거가 있는 두 친구의 안락사 여행은 ‘죽음’에서 연상되는 음울한 색채와는 거리가 멀다. 알모도바르 감독 특유의 강렬한 원색과 모던한 미장센이 시공간을 꽉 채운다. 심지어 죽음의 순간은 별장에 걸린 에드워드 호퍼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 예술적이다. 데드 마스크에 등급이 있다면 ‘명품’ 라벨을 매길 만하다.
MBC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은 불법 조력사망을 시행하는 의사와 형사의 추격전을 그렸다. [사진 MBC]
누구나 꿈꿀만한 마지막이지만, 엘리트 계층인 상연과 마사의 경제적·문화적 자본이 없다면 이런 우아한 죽음이 가능할까. 호평 일색인 ‘은중과 상연’에 비해 동시기 방영된 MBC 드라마 ‘메리 킬즈 피플’이 최종회 시청률 1.1%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은 건 조력사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지부조화를 말해준다. ‘메리 킬즈 피플’은 낭만주의 대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다양한 사람들의 조력사망을 비밀리에 행하는 의사와 형사의 추격전이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짓 살인이야.”(형사 역 이민기) “당신은 나 절대 못 잡아. 난 죄가 없거든.”(의사 역 이보영). 조력사망 시행자가 살인자인지 구원자인지 물으면서, 드라마는 온갖 고통스러운 죽음의 민낯을 드러낸다. 막상 자신의 지인이 비극적 상황에 처하자 형사는 딜레마에 빠지고, 의사의 호소 “도와주세요”가 최종회 마지막 대사다.
어쩌면 화면 밖을 향해 있는 이 호소가 얼마나 응답받을까. 마약수사와 경찰비리를 엮고 긴장감과 유머감각까지 줄타기 하는 서스펜스 장르물인데도 시청률은 갈수록 추락하며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무거운 주제를 오락거리 삼았다는 비판과 함께, ‘은중과 상연’의 낭만적인 아이디어에 매혹된 대중이 ‘메리 킬즈 피플’이 보여준 거친 현실은 직시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사실 ‘메리 킬즈 피플’은 2017년 호평 받은 캐나다 드라마 리메이크다. 2016년 의료 조력사망(MAiD)이 합법화된 캐나다에서 굳이 불법 조력사를 이슈화한 것이다. 드라마가 법이 정한 기준 밖에 존재하는 고통의 사각지대를 파고든 셈인데, 이후 실제로 법 적용 범위가 확대됐고 합법화 8년 만인 지난해 연간 사망자의 5%를 안락사가 차지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와 같은 수치다.
“돌봄 시스템 구축부터 논의 시작해야” 우리 현실은 어떨까. 2018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만 합법화됐고, 약물을 투여해 사망을 유도하는 ‘조력존엄사(조력자살)’에 관한 법은 지난해 발의된 상태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법안은 의료계와 종교계의 반발로 진전 없이 폐기됐지만, 최근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의료의향서 등록자가 300만 명을 넘고 조력존엄사 합법화를 찬성하는 국민도 82% 이상이라니, 집단지성이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의료윤리학자인 김준혁 연세대 교수는 드라마 등에서 그려지는 조력사망에 대한 환상을 우선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허구의 서사보다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력사망에 대한 막연한 환상 속에 자살 방조를 조력사망과 혼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강하게 반발하는 세력이 생기고, 사회적인 논의를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 실제로 제도 시행을 통해 도움 받아야 할 사람을 위해서라도 적용 대상과 안전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피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초고령화와 조력사를 화두로 던진 일본영화 ‘플랜75’. [사진 각 제작사]
민감한 것은 적용 범위다. 지난해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랜 75’는 초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75세 이상 희망자에게 조력사망을 지원한다는 설정이 충격을 던졌다. 영화적 상상이긴 해도, 넓게 해석되기 마련인 법의 속성상 자칫 사회적 약자에게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실제로 캐나다에선 급격한 대상 확대로 인해 살 집이 없어 조력사망을 선택한 경우가 보고되고 인권 단체가 반발하면서 제도 재정비에 대한 요구가 나오고 있다.
조력사망 이전에 ‘말기 돌봄’부터 화두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존엄사를 고민하는 이유가 돌봄 시스템이 부재한 현실 탓이란 것이다. 김준혁 교수는 “외국의 시행착오와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한 상태에서 조력사망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면 충분한 안전망과 대상자 선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결국 소수의 대상자를 위하게 되는 입법을 서두르기보다 말기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갖지 않도록 돌봄 시스템 구축에 대한 논의를 먼저 시작해야 혜택을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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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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