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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재연한 히틀러 욕조 사진 장면(오른쪽)과 실제 리 밀러가 찍은 히틀러 욕조 사진입니다. 정말 비슷하죠? 사진 연출을 위해 벗어둔 흙 묻 현대캐피탈 무직자 은 구두까지 그대로 살렸습니다./영화사진진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는 총탄이 오가는 전장에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케이트 윈슬렛의 얼굴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1977년 영국의 한 농가로 옮겨가요. 좀 더 나이든 케이트 윈슬렛을 보여주는데, 그녀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리 파산신청 밀러입니다. 1977년이면 리 밀러가 70세. 그녀의 맞은편에 한 남성(조쉬 오코너)이 앉아있는데 저는 이 부분부터 집중이 확 되기 시작했어요. 남성이 리 밀러를 인터뷰하는 중이거든요. 그런데 그녀의 답변이 퉁명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대체 이 인터뷰에서 뭘 얻으려는 거지?”(리) “얻다뇨.”(기자) “이 질문이 어렵다면 좋은 기자는 못 되겠군.”(리)
부동산 전망 이런 문답이 오가니 보는 제가 다 긴장이 되더군요. 저 정도는 아니더라도 가끔 까다로운 취재원이 있긴 해요. 그럴 때 잘 풀어내는 것도 실력이긴 한데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기자는 미소로 넘겨보려 해요. “꼭 그렇게 거래하듯 해야 해요?”(기자) “인생이 그러니까. 서로 주고받기로 해. 너의 이야기도 말해주기로.”(리) “좋아요.”(기 캐피탈고금리 자) 이렇게 이야기가 풀리면서 리가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이후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 (제가 이 앞부분을 자세히 말씀드리는 이유가 있는데, 이유는 젤 뒤에요.)
그녀의 과거 회상은 1938년부터입니다. 리가 31세 때군요. 20대에 미국 보그 등에서 모델로 일했던 그녀는 이 무렵 사진작가로 일하며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여기서 영국 미술상이자 작가였던 롤런드 펜로즈를 만납니다. 롤런드 펜로즈 역은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함께 어울리는 솔랑주 역에 마리옹 꼬띠아르 등 캐스팅이 은근히 탄탄해요. 리는 롤런드와 사랑에 빠지고 그를 따라 런던으로 가게 됩니다. 1940년이 되니 2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런던으로 밀려오고 리는 영국 보그에 사진기자로 들어갑니다. 이 무렵을 회상하는 리에게 기자의 질문. “아이를 원하지 않았군요.” “기대를 안 했어. 엄마 자질이 없었거든. 늙은 여자한테 뭘 그리 물어.” 아, 이 인터뷰 쉽지 않네요. 하지만 참아야죠. 저라도 어떻게든 맞췄을 거에요. 최대한 진심으로.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의 주인공 리 밀러의 실제 모습입니다. 모델 시절(왼쪽)과 종군 사진기자 때인데, 분위기가 참 다르죠. 그만큼 격정적인 인생을 살았던 그녀의 이야기가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에 담겨있습니다.


리는 보그지가 파견한 종군 사진기자로 일하게 되는데요, 80년 전 그때, 특히 전장에서 여성은 배척의 대상이었죠. 그런데도 리는 여성의 시선이기에 포착할 수 있는 여러 장면을 찍습니다. 여군 숙소에 걸려있는 빨랫감이 환한 햇살을 받아 나풀거리는 순간 같은 것들. 어느 여군 조종사는 “기자님 사진 덕에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요”(아흑, 이런 훈훈한 멘트를!)라고 말해서 리를 감격시키기도 해요. 리는 데이비드 셔먼(앤디 샘버그)이라는 라이프지 사진기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평생의 친구가 됩니다.
제가 젤 위에 보여드린 히틀러 욕조 사진을 찍은 사람이 셔먼이에요. 1945년 리는 안전한 런던으로 오라는 롤런드의 간청을 뿌리치고 전쟁의 심장부 깊숙이, 독일 다하우의 유대인 수용소까지 찾아갑니다. 거기서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사진으로도 남겨요. 그 뒤에 찾아가는 곳이 뮌헨에 있는 히틀러 아파트입니다. 다하우의 흙이 묻어있는 부츠를 보란 듯이 벗어놓고 욕조에 들어가서 찍은 사진이 저 위의 사진인 거죠. 그러니 역사적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겠고요.
리는 총탄이 튀기는 전투 한가운데 뛰어들기도 하는데, 한번은 병사에게 성폭행당할 뻔한 여성을 구해줍니다. 적군에게 속아 정보를 넘겨준 여성이 “부역자 창녀”로 불리며 머리카락이 잘리는 모습을 보다가 “수치심이 뭔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 상처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보이지 않는 상처도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는데 영화 후반부를 보니 이렇게 스쳐간 장면이 나중에 그녀의 행보를 이해하는데 의미가 깊은 부분이었어요.
제가 이번 레터 제목에 적은, 리가 7살 때 당한 끔찍한 폭력. 실제 기록을 찾아보니 부모의 친구의 지인쯤 되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선 리가 절친인 영국 보그 편집장에게 고백을 하는 형식으로 관객도 그녀의 과거를 알게 됩니다. 리의 모친은 그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리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평생 껴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녀가 무모하게 전장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던 것은 어쩌면 그런 기억과 싸우며 날마다 홀로 치르던 전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에서 리 밀러와 전장을 동행하는 데이비드 셔먼(왼쪽)은 실제로 '라이프'지의 유명한 사진가입니다. 밀러의 히틀러 욕조 사진을 촬영한 사람도 셔먼입니다./영화사진진


리를 인터뷰하던 기자도 물론 이 고백을 듣게 되죠. 그리고 리는 인터뷰 초반에 얘기했던 대로 기자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요. 자, 여기서 생각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납니다. 기자가 리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들려주면서 드러나는 사실. 바로 그 기자의 정체. 여러분께서 영화를 직접 보시고 찾아보시길. 전 첨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어쩐지 그렇게 까다롭더라니. 어쩐지 요즘 핫스타인 조쉬 오코너가 나오더라니.
리는 타고난 미모와 재능으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였습니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친구였고, 피카소와도 교류했으며, 화가 만 레이의 제자이자 연인으로도 유명한데, 만 레이 작품 중 일부는 실제로는 리의 것이었다고도 하네요. 만 레이와 리가 누구 작품인지를 두고 격하게 다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단 여자’도 보시면 여러가지 새롭게 발견하실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 중간에 리 밀러가 타자기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진실되면서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잘 쓰고 싶어”라고 셔먼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맞아, 맞아요.) 셔먼은 “일단 진실에 집중해. 잘 쓰는 건 그 다음에”라고 충고해요. 어찌나 와닿았던지요. 콱하고. 잘 쓰려다보면 진짜 잘 안 써지거든요. 이번 레터도 그랬고, 지난 레터도, 지지난 레터도. 그리고 아마도 다음 레터도. 그래,그럴 땐 진실에 집중하자, 이렇게 다짐하며 오늘 레터는 마무리하려 합니다.
아, 마침 리 밀러의 미발표 작품을 포함한 대규모 회고전인 ‘리 밀러’가 내달 2일부터 내년 2월15일까지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다고 합니다. 혹시 런던 계신 분 혹은 가실 분은 들러보시면 어떨지요. (링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