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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관련한 어릴 적 기억이 서정적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옥수수 자체의 맛과 식감을 좋아하게 됐다. 옥수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곡물의 찰진 식감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옥수수 품종들이 속속 개발됐다. 흔히 ‘미백찰’ ‘대학찰’ 등으로 불리는 찰옥수수 품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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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사탕·설탕옥수수’라고 불려









초당옥수수 상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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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알갱이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씨앗인데 크게 배(씨눈), 배유(씨젖), 과피(껍질)로 나뉜다. 이중 부피와 무게로 봤을 때 가장 많이 차지하는 건 씨젖이다. 옥수수 알갱이 하나의 80~85% 정도를 차지한다. 씨젖의 90%는 전분으로 구성된다. 찰옥수수는 온라인배경
이 전분의 구성 성분 가운데 아밀로펙틴의 비율을 80% 이상 끌어올린 품종이다. 이 비율이 찰옥수수의 찰진 식감을 결정한다.

아밀로펙틴의 역할은 찹쌀과 멥쌀로 비교하면 쉽게 이해된다. 멥쌀에도 찰기는 존재하지만 찹쌀은 찰기가 극단적으로 높다. 멥쌀의 아밀로펙틴 비율은 70~80%, 찹쌀의 아밀로펙틴 비율은 95% 이상원익IPS 주식
이다. 즉, 찰옥수수는 찹쌀처럼 아밀로펙틴의 비율을 극단적으로 높인 옥수수다. 찰기가 아무리 좋더라도 껍질이 너무 두꺼우면 식감이 떨어진다. 미백찰, 대학찰 등의 찰옥수수는 아밀로펙틴의 비중을 높임과 동시에 껍질을 최대한 얇게 만들어 최적의 식감까지 가진 옥수수다. 찰기를 유난히 좋아하고 별다른 조리 없이 옥수수를 쪄서 그대로 먹는 한국인의 취향이 반영된 스켈핑기법
가장 한국적인 옥수수라 할 만하다.
그런데 2015년 전혀 새로운 옥수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바로 초당옥수수다.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초당옥수수는 처음에는 ‘사탕옥수수’ ‘설탕옥수수’ ‘마약옥수수’ 등으로 불리다 2017년부터 초당옥수수라는 명칭이 굳어졌다. 초기에는 이름 때문에 두부로 유명한 강릉시 초당동과 무슨 관계가 있나 오해도 많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뛰어넘을 ‘초(超)’와 달콤하다는 뜻의 ‘당(糖)’이 결합된 극단적인 단맛의 옥수수라는 사실을 안다. 초당옥수수는 1950년대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을 당시부터 ‘수퍼 스위트 콘(Super sweet corn)’으로 불렸으니 돌고 돌아 제 이름을 찾은 셈이다.
찰옥수수와 마찬가지로 초당옥수수의 탄생 과정 역시 일종의 돌연변이고, 인간은 이 돌연변이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춰 개량했다. 사실 옥수수의 탄생과 역사 자체가 돌연변이와 개량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수수 알갱이(씨앗)는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만든다. 단맛의 포도당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하게 결합된 녹말로 변한다. 그리고 단맛이 사라진다. 때문에 옥수수는 익을수록 당도가 떨어진다. 그런데 초당옥수수는 포도당을 녹말로 합성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이 과정이 수월치 않다. 포도당이 녹말로 전환되지 않고 단맛을 가진 당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초당옥수수는 씨젖이 대부분 액체 상태다. 이것이 초당옥수수 맛의 진짜 매력이다. 단지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알갱이를 깨물면 다디단 과즙이 터져 나오는데 그 순간이 정말 매력적이다.

단맛 호기심 줄며 인기 예전만 못해









큰 볼에 연어, 토마토, 초당옥수수, 달걀, 잎채소를 듬뿍 넣어 만든 건강 샐러드와 소스. [중앙포토]







그런데 단맛으로 순식간에 주목받았던 초당옥수수가 그 단맛 때문에 오히려 발목이 잡히고 있다. 처음에는 그 엄청난 단맛에 끌려 너도나도 초당옥수수를 찾았고, 이런 시장의 반응을 의식한 농가에서도 재배 면적을 급격히 확장했다. 하지만 채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초당옥수수의 인기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재배 면적이 점차 줄고 있다는 소식이다. 단맛에 끌렸던 소비자의 호기심이 점차 줄고, 저장성이 약하고 수확 기간이 짧은 한계로 농민들 역시 꾸준히 사랑 받는 찰옥수수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사실 과일이나 곡물에서 단맛은 매력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그리고 단맛은 다른 모든 장점을 상쇄시키는 위험이 있다. 단맛은 맛의 요소 중에서도 강력한 개성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당옥수수는 옥수수를 익혀서 바로 먹는 한국인 식습관에는 적합하지 않다. 초당옥수수의 단맛과 과즙 그리고 특유의 향은 오히려 다양한 요리로 활용될 때 그 매력이 두드러진다. 우리는 초당옥수수가 가진 이런 매력을 아직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 단지 단맛에만 끌려 너무 빨리 초당옥수수와 정을 떼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옥수수와 함께 여름을 맞고 여름을 보낸다. 초당옥수수가 시장에 등장하면 여름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초여름은 그렇게 달콤하게 보낸다. 경상남도에서 시작해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거쳐 충청도와 강원도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초당옥수수의 사이클은 한 달 남짓. 초당옥수수가 시장에서 사라질 즈음이면 찰옥수수가 등장한다. 여름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신호다. 한여름의 열대야는 찰옥수수의 찰기와 함께 버틴다. 찰옥수수마저 시장에서 사라지면 아침저녁으로 가을 느낌이 물씬 풍긴다. 이러니 내게는 매년 옥수수와 관련한 추억이 쌓일 수밖에 없다. 오늘부터 나는 매일매일 초당옥수수의 달콤한 유혹에 빠질 예정이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