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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강보한
등록일: 26-01-0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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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우 기자]
▲ 남원 혼불문학관
ⓒ 이완우
한 해의 끝자락에 전북 남원을 찾았다. 혼불문학관을 병풍처럼 에두른 노적봉(568m) 능선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을 걷는 일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소설 <혼불>의 문장과 지형, 기억과 시간이 겹쳐지는 사색의 여정이었다.
2025년 12월 31일, 혼불문학관에서 호성암지(虎成庵址) 마애미륵불좌상을 지나고, 닭벼슬봉(556m)을 거쳐 노적봉 정상에 오르는 경로는 3.4km의 바위가 많은 숲길이었다.
혼불문학관을 출발해 순천완주고속도로를 암거로 횡단 오리지널바다이야기 하고 문학관 갈림길을 지났다. 이 혼불문학관 둘레길에는 곳곳에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의 내용과 관련된 지명이 붙어 있다. 소설 <혼불>의 문장을 작은 판에 짧게 써 놓아 문학적 향기가 가득한 사색하는 산책길이 됐다.
'바람닫이 땅'에서 꿈을 즉각적으로 실현하려는 조급함을 경계하고, 시간과 인내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라는 '땅속에 밀 야마토연타 씨앗들을 묻어 놓아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옹구네 쉼터'를 지났다. 옹구네 수그린 고개 뒷덜미로 내려앉은 달빛이 싸르락 싸르락 소리를 냈다고 한다.
걸으며 읽는 소설 속 문장
사아다쿨
▲ 남원 호성암지 미륵불좌상
ⓒ 이완우
'당골네 너른골'을 지 골드몽 나 호성암지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바위 절벽에 미륵불좌상이 새겨졌다. 정오 가까운 햇살이 미륵불 조각의 상부를 비쳐서, 하부의 그늘과 대비돼 그 밝음이 고요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바위 절벽 아래의 옹달샘에는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전북 문화유산자료인 호성암지 마애미륵불좌상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이 불상은 거대한 바위에 새긴 마애불로 미래에 태어날 미륵부처를 묘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활짝 핀 연꽃을 두 손으로 받들고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은 차분한 느낌을 준다.
옷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지만, 기다란 눈, 도톰한 코, 작은 입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새김이 얕아 조각이라기보다는 그림과 같은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예전에는 호성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호성사는 어느 도승이 호랑이에게 물려간 아이를 구해주고 그 아이의 부모로부터 시주를 받아 세웠다고 한다.
이 호성암지의 마애미륵불은 연화좌대에 앉아 있다.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바위를 누군가는 운근(雲根)이라 일컬어 '구름의 뿌리'라 하였다. 구름이 몸을 이루면 바위가 되고, 바위가 몸을 풀면 구름이 된다고 했던가.
호성암지에서 올려다 보면 바위 절벽 위에 하늘이 가깝다. 이곳은 산줄기의 능선 가까운 제법 높은 지형이었다. 무성한 대나무 숲을 통과하고 한참을 힘들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르니 '혼불 전망대 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굽은 소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선 숲길은 적막했다. 동남쪽으로 40km 거리의 지리산 주 능선이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아스라히 보인다. 북쪽으로 30km 거리의 진안 마이산이 앞을 가린 산줄기 위로 두 봉우리가 적당히 떨어져 보였다.
노적봉에서 석련대(石蓮臺)로 이어지는 능선인 '삼계석문 삼거리'에 올랐다. 이곳에서 노적봉까지 능선길로 1.7km이다. 석련대에서 노적봉까지 5km 거리라고 하니, '삼계석문 삼거리'에서 반대 방향의 석련대까지는 능선길로 3.3km가 된다.
석련대는 노적봉에서 이어진 산줄기 능선이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에 닿는 지점에 있는 연꽃 모양의 거대한 바위 지형이다. 삼계석문(三溪石門)은 오수천을 건너서 바위 절벽을 이룬 지형이다. 때로 삼계석문은 오수천을 경계로 노적봉 산줄기와 오수면 방향에서 이어진 장성산 산줄기가 만나며 이루는 이 지역을 이르는 지명이기도 하다.
오수천을 바로 앞에 둔 석련대는 잊혀진 명소로 보인다. 석련대는 호성암지 마애미륵불좌상과도 '연꽃'을 매개로 긴밀히 연결돼 보인다. 앞으로 혼불문학관 둘레길에서 '삼계석문'이란 지명보다는 더 직접적인 '석련대'라고 표기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석련대로 가는 능선길을 잡목 가지가 빽빽하게 덮여 통행이 쉽지 않아 보였다. 노적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진례고개'에 이르렀다. 이 고개에서 '사람의 마음이 목숨이니, 마음을 잃어버리면 한 생애 헛사는 것이다'라는 소설 <혼불>의 문장을 읽어보았다. 작품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삶의 태도다.
방황은 삶을 성찰하기 위한 필연적 흔들림
▲ 남원 노적봉 능선 닭벼슬봉
ⓒ 이완우
이제 칼날같은 바위가 하늘로 치솟으며 연속된 능선인 닭벼슬봉이었다. 기자가 보기에는 연꽃이 생동감 있게 피어나는 연꽃송이와 봉오리 같았다. 멀리 지리산의 천왕봉과 좌우에 호위하듯 낮게 서 있는 제석봉 중봉이 지리산을 식별하는 부호처럼 보였다.
닭벼슬봉을 지나서 '효원이 근심 푸는 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발걸음은 어느덧 '큰골 사거리'에 이르렀는데, 긴의자가 두세 개 놓인 고갯마루였다. 노적봉 정상을 오르면, 다시 이리 내려와서 혼불문학관 방향으로 임도를 찾아 내려가야 했다. 노적봉까지 0.5km 남았다.
'오유끼 고개(수동 삼거리)'이다. '조그만 방황 그것이 여행이다'라는 이곳의 문구가 시선을 새롭게 끌었다. 방황은 대체로 목표 상실이나 불안한 상태의 행동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방황은 삶을 성찰하기 위한 필연적 흔들림이었다. 길을 잠시 잃는 듯 보이는 순간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방향을 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 남원 노적봉 정상에서 조망한 지리산 방향 원경
ⓒ 이완우
▲ 남원 노적봉 정상에서 조망한 지리산 방향 원경ⓒ 이완우
노적봉 정상에 올랐다. 조그만 평원에 무성한 억새 이삭이 바람 따라 좌우로 고갯짓하고 있었다. 천황지맥, 지리산 방향으로 향하는 고남산의 백두대간 구간, 운봉고원 바래봉 능선, 그 뒤에 지리산 주능선인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가 겹겹히 펼쳐졌다. 남원시와 오수면의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노적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한 해의 결산표처럼 차분했다. 오르막과 내리막, 돌아간 길까지 모두 지나온 과정이었다.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 시간만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지리산 주능선의 목표인 천왕봉을 조망하는 이 높이에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제 내려가는 길이었다. 노적봉 정상에서 다시 오유끼 고개를 지나 큰골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았다. 혼불 소설에서는 이 노적봉의 발등이 매안마을이었다. 치마폭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논들을 가르며 구불구불 길이 났었고, 그 길은 정거장(서도역)으로 이어졌다고 하였다.
'강실이 숨터'에 이르렀다. 노적봉에서 2km 내려온 지점이었다. 임도 삼거리에 도착했다. 임도를 계속 걸어서 '꽃니네 뜰'을 지나서 이르렀다. 세 시간 전에 호성암지 방향으로 올라갔던 길과 만나는 혼불문학관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혼불문학관 둘레길을 걸어 올라가고 내려가며 노적봉을 다녀왔다. 이 과정에서 '기다림 또한 해야 할 몫이다'라는 생각을 거듭했다. 일이라는 것이 서두른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아직 덜 열린 꽃눈을 피우겠다며 불기운을 들이밀 수는 없는 법이었다. 모든 일에는 저마다 따라야 할 때와 이치가 있는 것을 거듭해 되새겼다.
시대의 혼(魂)을 붙들어 두는 심리적 의지처
▲ 남원 호성사
ⓒ 이완우
호성사에 도착했다. 이곳 남원 혼불문학관 옆 호성사(주지 송하 스님)는 노적봉 능선에 마애미륵불좌상이 남아 있는 호성암지(호성암)를 복원하려 조성한 사찰로, 늦어도 2018년 6월 이전에는 사찰(불사) 현장이 형성돼 언론에 소개됐다.
이곳 호성사에 호성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 안내판의 첫째·셋째 문단은 실제 호성암지의 내용이고, 둘째 문단은 소설 속 호성암의 내용이었다.
호성암은 마을 뒤 노적봉에 있는데, 한때 이삼십 명의 승려가 수도하던 절이다. 이 절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현재는 바위에 새겨진 석불만 남아 있다.
호성암은 (혼불 소설 속에서) 매안과 고리배미, 거멍굴 여인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공양미와 불전을 챙겨 들고 찾아가곤 했다. 호성암 도환 스님과 강호는 본사 법련사를 가는 길에 사천왕상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원의 개념과 동남서북에 관해 이야기한다.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호성암은 문학관 산책로를 이용하면 약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소설에서 호성사(혹은 호성암)는 등장 인물의 내면과 시대의 윤리를 비추는 '정신의 좌표'로 역할했다. 이 사찰은 <혼불>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지는 시대의 혼(魂)을 붙들어 두는 심리적 의지처인 공간이었다. 현재 새로 조성되어 있는 호성사는 소설 이 남긴 옛 호성암의 가치와 역할을 현재에 되살리는 문화적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혼불문학관 둘레길의 짧은 등산 여정을 마쳤다. 한 해의 끝은 어떤 결론이기보다 다음을 준비하는 여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내린 산길처럼 시간은 곧고 빠르게만 흐르지 않았고, 멈춤과 돌아섬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남겼다.
<혼불>의 문장들이 이 길 위에서 반복해 일깨운 것은 성취보다 태도, 결과보다 마음이었다. 노적봉 능선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온 이 하루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새해로 들어가기 위한 작은 문턱으로 남았다.
▲ 남원 노적봉과 닭벼슬봉 원경
ⓒ 이완우
▲ 남원 혼불문학관
ⓒ 이완우
한 해의 끝자락에 전북 남원을 찾았다. 혼불문학관을 병풍처럼 에두른 노적봉(568m) 능선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을 걷는 일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소설 <혼불>의 문장과 지형, 기억과 시간이 겹쳐지는 사색의 여정이었다.
2025년 12월 31일, 혼불문학관에서 호성암지(虎成庵址) 마애미륵불좌상을 지나고, 닭벼슬봉(556m)을 거쳐 노적봉 정상에 오르는 경로는 3.4km의 바위가 많은 숲길이었다.
혼불문학관을 출발해 순천완주고속도로를 암거로 횡단 오리지널바다이야기 하고 문학관 갈림길을 지났다. 이 혼불문학관 둘레길에는 곳곳에 최명희 작가의 소설 <혼불』>의 내용과 관련된 지명이 붙어 있다. 소설 <혼불>의 문장을 작은 판에 짧게 써 놓아 문학적 향기가 가득한 사색하는 산책길이 됐다.
'바람닫이 땅'에서 꿈을 즉각적으로 실현하려는 조급함을 경계하고, 시간과 인내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라는 '땅속에 밀 야마토연타 씨앗들을 묻어 놓아야 한다'는 글을 읽었다. '옹구네 쉼터'를 지났다. 옹구네 수그린 고개 뒷덜미로 내려앉은 달빛이 싸르락 싸르락 소리를 냈다고 한다.
걸으며 읽는 소설 속 문장
사아다쿨
▲ 남원 호성암지 미륵불좌상
ⓒ 이완우
'당골네 너른골'을 지 골드몽 나 호성암지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바위 절벽에 미륵불좌상이 새겨졌다. 정오 가까운 햇살이 미륵불 조각의 상부를 비쳐서, 하부의 그늘과 대비돼 그 밝음이 고요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바위 절벽 아래의 옹달샘에는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전북 문화유산자료인 호성암지 마애미륵불좌상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이 불상은 거대한 바위에 새긴 마애불로 미래에 태어날 미륵부처를 묘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활짝 핀 연꽃을 두 손으로 받들고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은 차분한 느낌을 준다.
옷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지만, 기다란 눈, 도톰한 코, 작은 입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새김이 얕아 조각이라기보다는 그림과 같은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예전에는 호성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호성사는 어느 도승이 호랑이에게 물려간 아이를 구해주고 그 아이의 부모로부터 시주를 받아 세웠다고 한다.
이 호성암지의 마애미륵불은 연화좌대에 앉아 있다.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바위를 누군가는 운근(雲根)이라 일컬어 '구름의 뿌리'라 하였다. 구름이 몸을 이루면 바위가 되고, 바위가 몸을 풀면 구름이 된다고 했던가.
호성암지에서 올려다 보면 바위 절벽 위에 하늘이 가깝다. 이곳은 산줄기의 능선 가까운 제법 높은 지형이었다. 무성한 대나무 숲을 통과하고 한참을 힘들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르니 '혼불 전망대 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굽은 소나무들이 바람을 막아선 숲길은 적막했다. 동남쪽으로 40km 거리의 지리산 주 능선이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아스라히 보인다. 북쪽으로 30km 거리의 진안 마이산이 앞을 가린 산줄기 위로 두 봉우리가 적당히 떨어져 보였다.
노적봉에서 석련대(石蓮臺)로 이어지는 능선인 '삼계석문 삼거리'에 올랐다. 이곳에서 노적봉까지 능선길로 1.7km이다. 석련대에서 노적봉까지 5km 거리라고 하니, '삼계석문 삼거리'에서 반대 방향의 석련대까지는 능선길로 3.3km가 된다.
석련대는 노적봉에서 이어진 산줄기 능선이 섬진강 지류인 오수천에 닿는 지점에 있는 연꽃 모양의 거대한 바위 지형이다. 삼계석문(三溪石門)은 오수천을 건너서 바위 절벽을 이룬 지형이다. 때로 삼계석문은 오수천을 경계로 노적봉 산줄기와 오수면 방향에서 이어진 장성산 산줄기가 만나며 이루는 이 지역을 이르는 지명이기도 하다.
오수천을 바로 앞에 둔 석련대는 잊혀진 명소로 보인다. 석련대는 호성암지 마애미륵불좌상과도 '연꽃'을 매개로 긴밀히 연결돼 보인다. 앞으로 혼불문학관 둘레길에서 '삼계석문'이란 지명보다는 더 직접적인 '석련대'라고 표기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석련대로 가는 능선길을 잡목 가지가 빽빽하게 덮여 통행이 쉽지 않아 보였다. 노적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진례고개'에 이르렀다. 이 고개에서 '사람의 마음이 목숨이니, 마음을 잃어버리면 한 생애 헛사는 것이다'라는 소설 <혼불>의 문장을 읽어보았다. 작품에서 작가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삶의 태도다.
방황은 삶을 성찰하기 위한 필연적 흔들림
▲ 남원 노적봉 능선 닭벼슬봉
ⓒ 이완우
이제 칼날같은 바위가 하늘로 치솟으며 연속된 능선인 닭벼슬봉이었다. 기자가 보기에는 연꽃이 생동감 있게 피어나는 연꽃송이와 봉오리 같았다. 멀리 지리산의 천왕봉과 좌우에 호위하듯 낮게 서 있는 제석봉 중봉이 지리산을 식별하는 부호처럼 보였다.
닭벼슬봉을 지나서 '효원이 근심 푸는 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발걸음은 어느덧 '큰골 사거리'에 이르렀는데, 긴의자가 두세 개 놓인 고갯마루였다. 노적봉 정상을 오르면, 다시 이리 내려와서 혼불문학관 방향으로 임도를 찾아 내려가야 했다. 노적봉까지 0.5km 남았다.
'오유끼 고개(수동 삼거리)'이다. '조그만 방황 그것이 여행이다'라는 이곳의 문구가 시선을 새롭게 끌었다. 방황은 대체로 목표 상실이나 불안한 상태의 행동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방황은 삶을 성찰하기 위한 필연적 흔들림이었다. 길을 잠시 잃는 듯 보이는 순간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방향을 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 남원 노적봉 정상에서 조망한 지리산 방향 원경
ⓒ 이완우
▲ 남원 노적봉 정상에서 조망한 지리산 방향 원경ⓒ 이완우
노적봉 정상에 올랐다. 조그만 평원에 무성한 억새 이삭이 바람 따라 좌우로 고갯짓하고 있었다. 천황지맥, 지리산 방향으로 향하는 고남산의 백두대간 구간, 운봉고원 바래봉 능선, 그 뒤에 지리산 주능선인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가 겹겹히 펼쳐졌다. 남원시와 오수면의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노적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한 해의 결산표처럼 차분했다. 오르막과 내리막, 돌아간 길까지 모두 지나온 과정이었다. 마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 시간만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지리산 주능선의 목표인 천왕봉을 조망하는 이 높이에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이제 내려가는 길이었다. 노적봉 정상에서 다시 오유끼 고개를 지나 큰골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길을 잡았다. 혼불 소설에서는 이 노적봉의 발등이 매안마을이었다. 치마폭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논들을 가르며 구불구불 길이 났었고, 그 길은 정거장(서도역)으로 이어졌다고 하였다.
'강실이 숨터'에 이르렀다. 노적봉에서 2km 내려온 지점이었다. 임도 삼거리에 도착했다. 임도를 계속 걸어서 '꽃니네 뜰'을 지나서 이르렀다. 세 시간 전에 호성암지 방향으로 올라갔던 길과 만나는 혼불문학관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혼불문학관 둘레길을 걸어 올라가고 내려가며 노적봉을 다녀왔다. 이 과정에서 '기다림 또한 해야 할 몫이다'라는 생각을 거듭했다. 일이라는 것이 서두른다고 해서 성취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아직 덜 열린 꽃눈을 피우겠다며 불기운을 들이밀 수는 없는 법이었다. 모든 일에는 저마다 따라야 할 때와 이치가 있는 것을 거듭해 되새겼다.
시대의 혼(魂)을 붙들어 두는 심리적 의지처
▲ 남원 호성사
ⓒ 이완우
호성사에 도착했다. 이곳 남원 혼불문학관 옆 호성사(주지 송하 스님)는 노적봉 능선에 마애미륵불좌상이 남아 있는 호성암지(호성암)를 복원하려 조성한 사찰로, 늦어도 2018년 6월 이전에는 사찰(불사) 현장이 형성돼 언론에 소개됐다.
이곳 호성사에 호성암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 안내판의 첫째·셋째 문단은 실제 호성암지의 내용이고, 둘째 문단은 소설 속 호성암의 내용이었다.
호성암은 마을 뒤 노적봉에 있는데, 한때 이삼십 명의 승려가 수도하던 절이다. 이 절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현재는 바위에 새겨진 석불만 남아 있다.
호성암은 (혼불 소설 속에서) 매안과 고리배미, 거멍굴 여인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공양미와 불전을 챙겨 들고 찾아가곤 했다. 호성암 도환 스님과 강호는 본사 법련사를 가는 길에 사천왕상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원의 개념과 동남서북에 관해 이야기한다.
호랑이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호성암은 문학관 산책로를 이용하면 약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소설에서 호성사(혹은 호성암)는 등장 인물의 내면과 시대의 윤리를 비추는 '정신의 좌표'로 역할했다. 이 사찰은 <혼불>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지는 시대의 혼(魂)을 붙들어 두는 심리적 의지처인 공간이었다. 현재 새로 조성되어 있는 호성사는 소설 이 남긴 옛 호성암의 가치와 역할을 현재에 되살리는 문화적 기억의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혼불문학관 둘레길의 짧은 등산 여정을 마쳤다. 한 해의 끝은 어떤 결론이기보다 다음을 준비하는 여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내린 산길처럼 시간은 곧고 빠르게만 흐르지 않았고, 멈춤과 돌아섬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남겼다.
<혼불>의 문장들이 이 길 위에서 반복해 일깨운 것은 성취보다 태도, 결과보다 마음이었다. 노적봉 능선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온 이 하루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은 채 새해로 들어가기 위한 작은 문턱으로 남았다.
▲ 남원 노적봉과 닭벼슬봉 원경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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