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는 말


한국작가회의 엮음, 안온북스 펴냄
“이제 더는 엄마의 김장김치는 없다. 엄마는 죽었다.”
2024년 12월29일은 윤석열씨가 한밤중 계엄을 터뜨린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때였고, 그로 인해 치러질 제21대 대통령선거가 반 년도 남지 않은 때였다. 계엄과 대선 사이 181명이 탄 비행기가 추락해 179명이 숨진 참사가 일어났지만 어느 정치인도, 언론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는 특검이니 검증완료릴게임 , 관세니, 게이트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이야기에 번번이 밀려났다. 사람이 살지만 배 한 척 오가지 않는 무안공항 섬을 바라보다 못한 시인 마흔 명이 연락선을 띄웠다. ‘보고 싶다는 말’을 새긴 종이배는 물에 젖지 않고 가라앉지 않는다.

 



바다이야기무료머니
유령 연구


그레이스 M. 조 지음, 성원 옮김, 동녘 펴냄
“과거는 물질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빚어낸다.”
양공주, 양색시, 군인 신부라 불리는 존재는 ‘나’를 있게 한 폭력의 역사였다. 어머니가 한국에 두고 온 과거를 사회학자 바다이야기사이트 가 된 딸은 자기 삶의 과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말은 비밀에 부쳐지고, 역사는 삭제하려 한다. 공적 담론 역시 부재했다. 이 ‘유령적 존재’를 연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저자는 유령을 대신해 기꺼이 말하는 자리에 서야만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여자들을 찾아내고, 연결되기를 바랐다. 전쟁 트라우마 당사자와 가장 깊게 연결된 몸은 자신과 같은 ‘유령들’의 릴게임모바일 아이들이기도 했다. 미학자 양효실은 그점에서 이 책을 소수자로서 자신을 긍정하고 확장하는 공부, 즉 ‘자기 이론’의 전범 같은 책이라고 평한다.

 




미시마 유키오, 죽음의 충동과 허무의 미학

바다이야기릴게임
이노우에 다카시 지음, 정선태 옮김, 교양인 펴냄
“나는 흉사를 기다리고 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미시마 유키오를 천황 숭배 등 얼빠진 극우 사상을 신봉하다가 스스로 할복한 ‘미친놈’쯤으로 본다. 그러나 미시마가 극좌 세력인 동경대 전공투와 치열한 공개 토론을 벌이고 일정한 공감대까지 형성했던 사람이라면 이미지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미시마 유키오 연구의 제1인자로 꼽히는 저자는 이 책에서 ‘그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미시마의 작품과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검토한다. 미시마 특유의 에로티시즘과 자기 파괴적 폭력성, 니힐리즘, ‘자살을 통한 미적 완성’이라는 관념들이 일본의 패전 전후사와 어떻게 엮이며 형성되었는지, 독자들은 찬찬히 살펴볼 수 있다.

 




스피노자 자연스러운 삶을 위한 철학


황진규 지음, 철학흥신소 펴냄
“‘슬픔’은 우리를 파괴하는 감정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근대 속에서 근대를 뛰어넘은 철학자’로 평가된다. 신과 정신, 이성(理性)이 추앙받던 17세기의 유럽에서 신이 아닌 자연, 정신보다 몸, 이성보다 욕망과 감정을 앞세운 그의 사상은 이단으로 몰려 가혹한 종교적·사회적 탄압을 감수했을 만큼 혁명적이었다. 이 책은 스피노자의 저서로 당대엔 ‘악마의 책’으로 불렸던 〈에티카〉를 바탕으로 인간의 정신과 신체, 욕망과 감정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풀어낸다. 특히 저자 자신이 ‘잘나가던 후배에 대한 질투’ ‘돈에 대한 집착’ ‘직장에 대한 회의’ 같은 경험들을 스피노자의 사상으로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한국은 해킹되었습니다


심나영·전영주·박유진 지음, 사이드웨이 펴냄
“일련의 해킹 사태는 우리에게 묻는다. 사이버 공간에서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해킹으로 인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매일 보도되고 있다. ‘앗! 내 개인정보 타이어보다 싸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올 정도다. 이 책은 IT 최강국이 개인정보 유출 최강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낱낱이 분석한다. 해킹당했음에도 음지에 숨을 수밖에 없던 기업 대표와 직원들, 해커와 몸값을 담판 짓는 어둠의 협상가, 해커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던 화이트 해커 등 수백 명의 인물을 기자 셋이 만났다. 이들이 발굴해낸 기록은 한국 사회가 해킹을 명백하게 방치했음을 고발하며, 더 이상 정부가 뒷짐 진 심판자가 아니라 해킹당한 기업을 양지로 끌어내는 조력자가 되어야 함을 주문한다.

 




전차 B의 혼잡


데라다 도라히코 지음, 안은미 옮김, 흰소 펴냄
“적절한 과학 상식은 어떤 일과 마주했을 때 우리에게 ‘과학적으로 성찰할 기회와 여유’를 준다.”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헛소리’ 하나가 사회를 혼란에 빠트릴 때가 있다. 정체불명의 유언비어가 날조·유포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보면 뜻밖에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지 모른다. 도심 주요 건물에 폭탄을 설치하겠다는 뜬소문이 퍼졌다고 가정해보자. 빌딩 여러 곳을 삽시간에 날려버리는 데 필요한 폭탄 수량과 거기에 필요한 시간·기술·인적 자원 등을 냉정하게 고려해보면, 도시 전체가 화염에 휩싸일까 봐 마냥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기우일지 모른다. 일본 근대 물리학의 선구자이자 ‘글 쓰는 과학자’라 불린 저자가 일상적 소재를 통해 사회문제와 과학의 관계를 파고든 기록을 담았다. “문명은 진보하는데 왜 인류는 여전히 ‘멍청한 선택’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이 궁금한 이들에게 권한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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