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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추경·반도체 해법 외면하며 집회만 몰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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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추락한 한국 위상 참담
올해 3·1절, 전국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이어졌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엔 모두 12만 명 정도(경찰 추산)가 참여했고, 헌법재 사금융대출 판소 인근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엔 약 1만8000명이 모였다.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최종변론까지 마무리된 상황에서 시민들이 광장에 몰리는 현상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드러난 여야 정치인들의 행태다.

여의도 탄핵 반대 집회엔 김기현·추경호·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37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느 베네딕도수녀회 닷없는 계엄 사태로 혼란을 몰고 온 윤 대통령 칭송 발언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김 의원은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가시밭길이라도 가겠다고 결단한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했고, 나 의원은 “정말 용기 있는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 야당도 나을 게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 130여 명이 탄핵 찬성 집회에 달려갔다. 이 대 호주취업지원 표는 여당을 겨냥해 “수구조차도 못 되는 반동일 뿐”이라고 퍼부었다.
12·3 계엄 이후 닥친 사회 혼란과 경제 위기를 수습하려면 여야가 지혜를 모아도 버거울 판이다. 특히 국회는 지난주에도 추가경정예산과 국민연금·반도체특별법 등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협상을 벌였다. 협상의 기본은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다. 위기 극복의 골든타임이 끝나 웰컴 가는 마당에 여야가 견해차를 좁히기는커녕 몽니와 돌출 행동으로 찬물을 끼얹는다. 그래놓고 극단적 주장이 난무하는 장외 집회에 몰려가 극언을 쏟아낸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에서 한국은 전년보다 점수가 폭락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함 있는 학원강사 자격 민주주의’로 추락했다. 순위도 167개국 중 22위에서 32위로 후퇴했다. EIU 보고서는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와 후속 정치적 교착상태”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계엄 자체도 문제지만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서도 협치는 외면한 채 장외 비난전에만 열을 올리는 여야가 한국 민주주의 퇴보의 주범임을 알 수 있다.
여·야·정 국정협의회 회의 직전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요구하며 불참을 선언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나 국민연금 모수개혁에 자동조정장치를 들고나와 협상을 꼬이게 한 정부·여당 모두 국민의 고통이 안중에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여기저기서 비상벨이 울리는 나라를 구하는 일은 뒷전인 채 비상계엄 이후 분출하는 광장의 증오와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궁리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이제라도 장외 선동 유혹을 떨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노력하고 양보하는 정당이 국민의 신뢰, 특히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