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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119sh.info
1979년 12월 12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물줄기가 비극 쪽으로 꺾인 날이다. 그날 밤, 권력에 눈먼 정치 군인들은 총칼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유린했다. 당시는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8년 유신 독재' 종식과 '민주화의 봄'에 대한 기대가 무르익던 시기였다. 역사는 이 때를 '서울의 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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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가 주도한 반란박정희 사후 대한민국은 거대한 진공 상태였다.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실질적 권력은 계엄사령부로 쏠렸다. 이 틈을 노린 것이 보안사령관 전두환이다. 그는 합동수사본부장 직책을 발판 삼아 10·26 사건 수사를 총괄하며 군부 내 입지를 급속히 넓혀갔다.
바다신게임전두환의 배후에는 '하나회'가 있었다. 육군사관학교 11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비밀 사조직은 영남 출신 엘리트 장교들의 결속체였다. 군 내 요직은 대부분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전두환을 수장으로, 동기생 노태우를 2인자로 한 이 조직은 자신들을 견제하려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제거에 나섰다.
군사반란의 시작이었다. 작전명 ' 바다이야기APK 생일집 잔치'는 치밀하게 준비됐다. 12월 12일 저녁, 전두환 측은 정승화 총장을 강제 연행하기 위해 공관을 급습했고,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동시에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을 압박하는 한편 최전방 휴전선을 지키던 제9보병사단(사단장 노태우 소장) 병력을 대통령 재가 없이 서울로 불법 이동시켰다. 북한의 남침에 대비해야 할 전방 부대가 수도 한복판 릴게임5만 에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것이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이 진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13일 새벽 반란군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했다. 군권을 손에 쥔 신군부는 이듬해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정권을 찬탈했고,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군인의 명예 지킨 故 김오랑 중령
1979년 12월12일 밤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군인들이 시민 통행을 막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는 이날 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총격전 끝에 강제연행하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동아DB
12월 12일 밤,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했던 순간이 육군특수전사령부에서 펼쳐졌다. 반란군 소속 제3공수특전여단 병력이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사령부로 진입했다. 상관에 대한 충성과 군인의 본분 사이에서 대부분이 도망치거나 침묵을 택한 그 순간, 사령관실을 끝까지 지킨 이가 있었다.
김오랑 소령은 M16 소총으로 무장한 10여 명의 반란군 앞에서 "사령관님을 홀로 둘 수 없다"며 권총 한 자루로 맞섰다. 6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군인의 명예를 지켰다. 그의 시신은 부대 뒷산에 암매장됐다가 훗날 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김 소령의 아내는 남편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시력을 잃었고, 이후 실족사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을 겪었다. 김 소령은 2014년 중령으로 추서됐고, 2022년 관련 법 개정으로 비로소 전사자로 인정받았다.
비극은 이 뿐이 아니었다. 반란을 막으려 했던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은 강제 예편 후 부친 사망과 외아들의 의문사라는 고통을 겪었다.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도 강제 예편돼 12·12의 부당성을 알리다 1989년 변사체로 발견됐다.
하지만 군사반란 주역들은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었고, 7년 뒤 노태우가 뒤를 이었다. 반란에 가담했던 박희도, 최세창, 장세동 등 하나회 핵심 장성들은 신군부 정권 아래서 장관, 국회의원, 공기업 사장 등 요직을 거치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역사의 심판이 이뤄진 것은 한참 뒤였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12·12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으로 규정됐다.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 수사로 관련자들이 법정에 섰고, 대법원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받는다"는 판결을 역사에 남겼다.
역사의 심판, 그러나 남은 모순전두환은 1997년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확정받았으나 같은 해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건의로 특별사면됐다. 그는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고, 회고록에서 5·18을 왜곡하는 등 반성 없는 삶을 살다 2021년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뉴스1
노태우 역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됐다. 그는 추징금을 완납했고, 자녀를 통해 간접적으로 과오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딸 노소영이 자신의 이혼소송에서 꺼내든 900억여 원의 새 비자금 의혹으로 논란이 재점화됐다.
12·12를 돌아보는 것은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니다. 군이 정치적 중립을 잃으면 어떤 참극이 벌어지는지, '국가에 대한 충성'이 '특정인에 대한 복종'으로 뒤바뀔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되새기는 일이다.
하지만 반란의 유산이 과연 청산됐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45년 전 그 겨울밤, 김오랑 소령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상관 한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군인으로서의 명예, 그리고 대한민국 헌정 질서였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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