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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영빛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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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제대로 것보다 없었던 왜요?나는 자신의 미워했던중국 뤼순(旅順)항이보이는백옥산 정상에 선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 김월배 교수 제공지난 20년 간 안중근 유해 발굴을 위해 중국 일본 등지 현장을 누빈 김월배(58) 하얼빈이공대 교수는 28일 “일제강점기 안중근 의사가 처형당한 중국 뤼순(旅順)감옥 일본 유해발굴대행업체였던 일본 ‘대륙공사(大陸公司)’의 실체를 찾아내면 안 의사 유해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관련 10여권 째 신간 ‘安重瑾(안중근), 고국으로 返葬(반장)해 다오’(헤르몬하우수 刊) 를 출간한 김 교수는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한일수교 60주년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을 계기로 안 의사 유해 개인신용평가시스템 위치 자료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 정부와 유해 발굴 허가권을 가진 중국 정부의 협조가 절실하다”며 “정부는 올해가 안중근 유해발굴의 절호의 기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국권이 회복되면 유해를 ‘고국으로 반장(返葬·타향에서 죽었을 때 유해를 선산에 모시는 것)해다오’라는 안 의사 유언을 실현, 광복의 완성을 이룰 해”라고 말했다.
다음은 빌라대출 일문 일답.
-이번 신간은 김 교수가 저술한 안중근 유해발굴 관련 서적 중 몇 번째인가.
“ ‘安重根, 고국으로 返葬해 다오’는 안중근 의사님이 남기신 유언이다. 제목에 활용한 것은 안중근 의사님의 유언을 받든다는 의미이다. 20여 년간 안중근 의사님 책으로만 10권이 넘는다. 일본에도 공저가 있고,중국에도 판매되고 5% 금리 있다. 즉 중국과 일본인들에게 안중근 의사를 알리려고 한 것이다. 또한 안중근 유해발굴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집대성하고 있다.”
-이번 책에서 ‘일본의 대륙공사(大陸公司)를 찾아라’라는 새로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대륙공사는 무엇을 했던 곳이며 왜 주목하게 됐는가.
“제가 뤼순에 상주하면서, 저우샹링(周祥令) 관장 대구은행중소기업대출 의 집을 방문했고, 많은 증언을 청취했다. 저우샹링은 뤼순감옥에서 초대 관장으로 1971년부터 1996년까지 근무했다. 그 후 딸인 주아이민 부관장(2024년 9월 정년퇴직)을 통하여 여전히 뤼순감옥의 산증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1986년 북한 발굴, 2006년 남북한 유해 위치, 2008년 한중 안중근 유해발굴단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필자에 은행대출이자계산기 게 의미 있는 증언을 제공하였다. 저우상령 관장은 본인보다 18살이 많은 중국인을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며, 1930년대에 인터뷰 당사자는 일본회사(대륙공사 뤼순지점)에서 근무하는 중국인이었다. 그 회사는 일본에서 사망자 발굴 의뢰가 오면, 뤼순감옥에 신청을 한다. 그러면, 뤼순감옥에서 공동묘지 사망 명부와 배치도를 가지고 0번째 줄 누구 매장이라는 것이 의뢰자의 신원이 일치하면 사망자를 제공했다고 한다. 사망자는 뤼순화장장(현재 원바오 두부 공장 내 시설)에 화장하여 시체를 일본으로 운송해주는 일을 직접 수행했다고 한다. 발굴 당시 약병은 목통 유골 위에 있어 이름을 매장 장부와 대조하며, 여러 차례 둥산퍼 발굴을 했다고 증언했다. 2024년 2월 24일에 저자들과 주아이민 부관장이 배석한 곳에서 다시 한번 증언을 하면서 그 회사의 이름은 대륙공사(大陸公司)라고 증언하였다. 당시 인터뷰 당사자는 사망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사망자의 이름이 적힌 약병은 모든 유골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망명부와 매장 배치도가 존재했음을 할수 있다. 그리고 1930년대 까지 둥산포(東山坡) 발굴을 한 적이 있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증언이었다. 대륙공사를 찾아야 한다. 또 1971년 3월 대련 국제전람 이라는 회사에서 둥산포 묘지를 파보았다는 증언을 해주었다. 1971년 3월 다롄시 국제전람 직원 샹훙뤄(享洪若), 롼하오즈(梁好智)가 뤼순감옥 묘지에 와서 10여구 유해를 판뒤, 감옥15공장 안에 복원했다. 그 두사람은 ‘국제전람센타에서 퇴직했다’라는 메모지를 직접 작성해 주었다.저 인원과 조직을 조사하면 둥산포 발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안중근 의사 매장지로 가장 유력한 중국 뤼순감옥묘지 둥산포의 2024년 모습. 김월배 교수 제공
-일본 어딘가에 대륙공사 문서가 남아있다고 보는가
“인터넷으로 일본아시아역사자료센타(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를 검색해 보았다. 거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전술한 증언이 사실이라면 존재할 것이다.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
-안중근 유해 추정 3대 지역 중 어디가 가장 유력한가.뤼순감옥 묘지(둥산포), 위안바오산 지역,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 부지(샤오파오타이산 3곳이 거론되고 있다.
“ 현재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지 않는다면 둥산포지역을 발굴해야 한다.현지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지로 언급된 현장 확인, 안중근 의사 유해와 관련된 자료 연구, 중국 내 관계자 증언 등에 따르면, 2006년 남북 유해발굴 발굴단이 매장지로 선정한 위안바오산 지역은 아쉬움이 크다. 안중근 의사 순국 당시 뤼순감옥 공동묘지로 확인된(뤼순감옥 주장) 둥산포가 현재 다른 사료가 없다면 반드시 확인해야할 장소이다. 뤼순감옥에서 2001년에 지정한 뤼순감옥 공공묘지가 일부 발굴되었지만, 다른 사료적 위치가 특정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2008년에 발굴했던 뤼순감옥 전문가들도 주장하였듯이, 이곳을 발굴할 필요성이 있다.”
-둥산포가 왜 가장 유력한가.
“둥산포는 지리적 환경이 타 발굴 추정 지역에 비해, 묘지로 쓰기에 적합한 야산의 형태와 토질도 배수가 잘 되는 마사토 성분을 갖고 있다. 현재도 둥산포 윗부분에, 일반인 묘지가 위치해 있다. 안중근 의사 역시 소노키의 ‘안의 사형 시말보고’에 따르면, 관동도독부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했다고 기록돼 있다.”
뤼순감옥 묘지에서 발굴된 원통형 유골에 작은 파란색 약병. 김월배 교수 제공
- 3대 안중근 의사 유해 추정 지역 상태는 현재 어떤가.
“뤼순감옥 묘지는 둥산포, 위안바오산 지역은 2008년 한·중이 이미미 발굴, 뤼순일아감옥구지박물관 단독으로 발굴한 곳은 샤오파오타이산 지역이다. 위안바오산은 아파트(Hill-One)가 들어서 있다.샤오파오타이산도 이미 발굴하여 흙산이다. 두군데는 발굴 불가능하다. ”
-매장지 거론 중일 인물의 주장은 어떤 차이가 있나.
“안중근 의사 매장지를 주장하는 일본인(3명), 중국인(9명), 한국인(3명) 등 총 15명에 이른다. 대부분 주장이 중심이고, 사료 제시는 일부에 그친다.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주장하는 주장자들은 3가지로 나뉠 수 있다. 우선, 단순 주장이다. 뤼순감옥 근무자의 주장을 전달 재해석하고 있다. 둘째 신문 기사와 순국 당시 문서를 가지고 특정 장소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매장지를 정확히 광범위하게 언급한 기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국가별로 주장이 다르다. 중국인은 주로 뤼순감옥 주변의 현황과 주장에 따라 특정하고 있다. 일본인 안중근 의사 순국시기 또는 뤼순감옥 존재시기에 자료나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1945년 이후 일본인들이 안중근 매장지를 주장하는 기록은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의 주장은 대부분 일본인과 중국인들의 주장을 재생산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안중근 매장지 실제 방문자는 중국측에서는 3사람(신현만, 이국성, 김홍범)으로 모두 재중동포이다. 사료 주장자는, 일본측(소노키, 이마이 후사코)이다. 한국측(김영광, 최서면, 김월배)은 기존 주장의 정리이다. 그나마 2차자료나 간접 사료(김월배)를 가지고 주장하기도 한다. ”
-광복 80주년인데 안중근 유해 발굴은 반드시 해야 하는가.
“광복 80주년에도 안중근 의사 유해를 뤼순 구천에 헤매게 할 것인가? 국가 차원에서는 상당수가 주장하는 둥산푸의 발굴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민간 차원에서도 전문가의 교류를 통해 자료 발굴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 중국, 일본 학자들의 민간 참여가 필요하다. 안중근 의사 유해 위치 사료와 후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한중일 학자들이 함께 걸으면 길이 된다. 동양평화를 염원하시다가 살신성인하신 안중근 의사, 평화주의자 안중근 의사 유언의 실현을 어찌할 것인가?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은, 동양 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열쇠이다. 한·중·일 삼국의 동양평화를 염원하시던 안중근 의사께서 세상에 남기신 가르침과 그분의 유해를 찾아야만 하는 우리들의 사명이다. 함께하면 길이 된다.”
뤼순감옥 초대 관장을 지낸 저우샹링(周祥令) 관장이 김월배 교수에게 적어준 대련 국제 전람 발굴과 발굴자 명단. 김월배 교수 제공
-화장 또는 기상재해로 인한 묘지 유해 훼손 가능성은.
“현재 안중근 유해 위치가 특정되어 있지 못하기에 모든 가설은 맞다고 본다. 그러나 여러 가지 가설을 주장하면, 중국측에서는 둥산포 발굴에 협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의견을 하나로 모아서 주장해야 한다. 기상재해로 인한 묘지 훼손 가능성은 있다.1911∼2022년 사이, 뤼순 지역은 총 16개년, 덩펑가는 총 14개년에서 월평균 강수량이 60mm 이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1911년, 1914년, 1926년의 월평균 강수량이 60mm 이상이었다. 1914년의 월평균 강수량은 폭우가 있었다는 1911년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목할 것은 1964년 월평균 강수량이 두 지역에서 모두 폭우가 내렸을 것이라 추정되는 월평균 60mm 이상의 기준보다 20mm보다 많은 각각 81.8mm, 81.7mm로 측정됐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칭창고원과학데이터센터에서 관측가능한 1901년부터 2022년까지 121년 동안 없었던 유일한 기록이다. 연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는 뤼순 지역에서 1964년의 월평균 강수량을 보았을 때, 이 시기 집중적 폭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봤을 때 뤼순 지역의 지형 변화를 일으킬 만한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 위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록 존재 여부와 은폐 가능성은.
“ 일본 가나자와 대학에 근무했던 다무라 미쓰아키(田村光彰) 호쿠리쿠대 명예교수가 보내온 자료가 있다. 1941년도부터 일본은 자료를 은폐를 시도하였고, 특히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 시기인 2015년부터 조직적으로 자료를 은폐했다는 기록을 보내온 적이 있다.
-일본 정부 안중근 의사 기록 보존 가능성은.
”첫째, 안중근 의사 유해의 매장 위치에 대한 기록 존재 여부와 보존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당시 일본에는 ‘관동 도독부·민정부·감옥서 기록 규칙’(이하 ‘기록 규칙’)이 있었다. 메이지(明治) 39년(1906년) 12월 13일 결의된 이 규칙은 감옥 직속 기관에 적용되는 것으로,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관동도독부감옥서에도 적용된다. 이 규칙은 총칙(제1∼3조), 선별 및 분류(제4~6조), 편집(제7~20조), 폐기(제21~22조), 대출과 보관(제23~26조)으로 이뤄져 있다. 이렇듯 기록에 대한 규칙이 세세한 만큼, 기록을 중요히 여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안중근 의사가 중요한 인물(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및 공판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관심, 안중근 의사 수감 기간과 순국 후 특별한 대우 등)이었던 만큼, 그리고 유해를 유족에게 인도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기밀이 있었던 만큼,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 위치와 관련해 그 기록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자료 은폐 가능성은
” 일본이 과거에 패전이 짙어지자 ‘불편한’ 자료를 없애거나 은폐하는 과정에서 만약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 위치 관련 기록 자료를 은폐했을 가능성을 가정해 본다면, 그 은폐한 자료는 어디에 있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까지 많은 학자들이 공개된 기록 및 사료를 통해 해당 자료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일본 궁내청(宮內廳) 서릉부(書陵部)의 공문서관, 내각부(內閣府) 산하의 역사 공문서 보관실, 국회 도서관의 헌정자료실(憲政史料室) 등이 유력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 의견이 있다. 아직 기록 자료를 찾아보지 못한 곳이나 보지 못한 미공개 자료들이 있다면 이를 열람하기 위해 일본의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일본 정부와 관련 당국의 안중근 의사 유해 관련 기록 및 자료 조사에 대한 협조와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대한 지속적 협조가 필요하다.“
- 안중근 의사 시신 찾기 가장 적합한 방안은 무엇인가.중국 뤼순공동묘지에서의 지표투과 레이더(GPR) 방식 유해발굴조사 실행 가능성 등 어떤 방식이 옳다고 보는가
” 유해 발굴을 매장지를 실제 파보는 것이 가장 좋다. 문제는 발굴후 기타 다른 유해가 나오면 처리할 방법이 요원하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지표투과 레이더 방식이다. 이는 2010년 2월에 미군이 뤼순감옥묘지(동산포)에서 실제 수행을 하였다. 미군의 유해는 발굴하지 못했지만, 실제 중국 외교부에서 허락하였다. 지표투과레이더는 땅속의 암석에 영향을 받는다.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재 팔 수 없다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본다. “
-유해 발굴 시 유해 일치 확인은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되는가.
” 관의 모양 차이(안중근 의사 침관, 뤼순감옥 죄수는 통관), DNA 검증, 1971년 발굴당시 남색 작은 약병이 나왔다. 그리고, 단지동맹 약지 등으로 교차 검증이 가능하다. “
-북한 한국 중국, 남북한 공동발굴 등 유해발굴은 어떻게 해왔나.중국은 남북 공동발굴 요청한다는데.
”1986년 북한은 뤼순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북한 안중근 유해조사단은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탐문 조사를 했다. 1986년 7월 27일~8월 7일(총 12일)로, 북한에서 외무성 아주국(亞洲局) 부국장 주진극(朱軫極)의 인솔하에 김순길(金順吉) 노동당 중앙연락부의 지도원, 이상용(李相容) 문인협회의 통역, 홍성찬(洪成燦) 법의 감정원 전문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안공근의 장남인 안우생이 조사에 참여했다고 기록했다. 다롄시 외사 사무실의 류즈화 부주임으로부터 중국 사학계에서 실시한 조사와 고증 사항을 전달받았다. 또한, 중국에서 1971년, 1982년부터 1986년까지의 안중근 의사 매장지에 대한 대규모 조사가 있었으나 이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았음을 전달받았다. 이어서 뤼순일아감옥, 관동도독부 지방법원, 뤼순일아감옥 및 뤼순 마잉허우에 있는 무덤의 옛터 참관 및 시찰했다.“
올해 초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삼의사 모역의 안중근 의사 가묘를 찾은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 김월배 교수 제공
-북한의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조사는.
”북한 조사단은 군중좌담회를 열어 줄 것을 중국 측에 요구하여, 뤼순에서 3번, 다롄 시내에서 1번, 총 4번의 좌담회에 47명이 참석했다. 북한 조사단은 다롄 지역의 조선 동포 대표를 조직해서 뤼순 지역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좌담회 형식의 탐문을 벌였는데 주로 조선족 노인의 의견을 경청했다. 이 조사에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못하였고, 이를 통해, 2006년 1차 남·북 발굴조사단의 조사 시에 뤼순감옥 공공묘지에 안중근 의사 유해가 묻혀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 제시의 계기가 되었다.2008년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북한은 문서상으로만 동의하고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2008년 3월 25일~4월 2일에 1차, 4월 10일~4월 29일에 2차에 걸쳐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시도했다. 조사에 한국 측은 14명, 중국 측은 4명이 참여했다.“
-남북 공동발굴 현황과 중국의 입장은.
” 2008년도 유해 발굴조사에서는 2006년도 남·북 공동조사단의 결론을 기본으로 이마이 후사코 여사가 최서면 원장에게 제공한 1911년 재감자추도회 사진과 1930년대 뤼순감옥 부근 지도 및 감옥 부근 지형도, 소노키 스에요시의 ‘안의 사형 시말보고’를 분석하여 조사를 진행했다. 발굴조사지역은 2006년 남·북공동조사단이 묘역 추정지 중 가장 신뢰성이 높다고 판단한 뤼순일아감옥구지 뒷산인 위안바오산 하단지역으로 이곳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했지만 안중근 의사 유해는 발굴되지 못했고, 오래된 생활 쓰레기만 나왔다. 이에 대해, 2008년 한·중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참여한 왕전런(王珍仁) 전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 부관장은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관련 논문에서 당시 한국 측 발굴 결과는 지형 지모나 역사적 주거환경, 사람들의 민속습관 등을 살펴봐도 안중근 의사 매장지일 가능성이 없다는 중국 측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했다.한국은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중국 측에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협조를 요청해 왔다. 하지만 중국 측은 안중근 의사의 고향이 북측인 황해도 해주라는 점을 이유로 남한과 북한이 함께 유해발굴을 신청하면 고려해 보겠다는 입장, 매장 위치에 대한 확실한 근거자료 필요 등의 이유로 ‘선 자료, 후 발굴’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유해 발굴 당면 과제 및 현안은.
”안중근 의사 유해매장 후보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후보지로 잘 알려진 둥산포 지역은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에서 공식 인정하는 관동도독부감옥서(뤼순감옥) 공동묘지이다. 중국에서 전람회 준비를 위해 이미 두 차례(1965년, 1971년) 일부 발굴한 적이 있지만, 전체지역은 아직 발굴하지 못했다. 이 지역은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뤼순감옥 묘지 보호를 위해 전국중점문물보호기관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개발에 대해 한시름 놓아도 된다고 볼 수 있지만 안심할 수 없다. 2006년 남북이 공동조사 시, 위안바오산 지역을 조사 지역으로 선정한 이후, 현장에 2007년 아파트 터 공사로 안중근 의사 유해 추정 묘역이 훼손됐다는 언론 보도에 따라, 발굴이 시급해지고 2008년 한중 공동조사(북한은 서류상으로만 참여)가 이뤄지게 된 적이 있다. 해마다 중국 청명절에 뤼순일아감옥구지 박물관 직원들이 이 지역에 나와서 보호 표지석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제사를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 지역을 상시 관리·감독하는 인원이 있는 것은 아니라, 설치가 허락되지 않은 목각조각(나날이 늘어남)이 둥산포 지역 샹양공원(向陽公園) 입구에 늘어서 있거나 불법적으로 사람들이 몰래 묻는 묘가 조금씩 계속 생기고 있다. 그러므로 지속적으로 이 지역에 관심을 갖고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와 중국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안중근 의사 관련 민간 교류가 필요하다. 민간에서 관련 중국, 일본 현지 학자 및 전문가들과의 학술 교류를 통해, 한국에서 찾을 수 없던 안중근 의사 유해 관련 자료나 유해발굴 관련 아이디어 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 일본과 민간 교류를 통해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도 장기적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앞서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중근 유해 발굴의 정부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안중근 발굴은 실적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연구 개발비처럼 꾸준한 투입이 필요하다. 정부 담당자가 가시적인 실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사업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미국의 유해 발굴 사례를 보면, 국방부, 문화재국, 국가 기록원, 외교부, 국가 보훈부, 통일부, 한국 지질자원 연구원, 민간 조직 등 종합 적인 전체를 컨트롤을 하는 중앙부터 상급의 컨트롤 타워가 있어서 상시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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