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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겨붙어있었다. 눈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이준기의 D사이언스박종찬 항우연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단장
한참 무더웠던 1992년 8월 11일. 이날은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인공위성 기술 자립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발사에 성공한 날이다. 당시 우리별 1호 발사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대학교 1학년의 까 손오공게임 까머리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우리별 1호 발사를 보고, 원래 꿈꿨던 기계공학 분야 연구자 대신 우주 분야 연구자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갔고, 취업도 우주항공 분야 국내 대기업에 했다.
소위 ‘우리별 1호 키즈’로 등극한 셈이다. 그리고 24년의 시간이 훌쩍 흐른 그는 바다신2다운로드 누리호 4차 발사의 총책임자를 맡아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 서막을 알리며 국내 우주개발 역사에 새 페이지를 장식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주인공이 바로 박종찬(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누리호) 고도화사업단장이다.
박 단장은 “발사체는 다른 연구 분야와 달리 엄청난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한 번의 발사로 온 국민들 릴게임다운로드 로부터 성공이냐 실패냐를 평가를 받기 때문에 매우 부담스러우면서도 상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커다란 기계장치로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과 환희를 줄 수 있는 분야가 ‘우주 발사체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그는 발사체의 특별함에 대해 부여했다.
지난해 11월 27일 누리호 4차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곧바로 5차 릴게임종류 발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 단장은 “누리호가 성공한 덕분에 연구진들이 5차 발사라는 또다른 기회를 얻게 됐다”며 “발사 성공을 확인한 순간 속으로 누리호에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대담=이준기 세종본부 과학바이오팀 부장
골드몽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우리별 1호가 키워준 ‘우주’와의 인연
박 단장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그 꿈이 바뀐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과학자가 되고자 했던 열망과 의지가 그만큼 확고했다.
그는 물리과목 중 역학(力學) 분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져 포스텍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박 단장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주에 관심이 없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우리별 1호 발사 성공을 TV로 지켜보면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인공위성이 극한 우주환경의 영향으로 기체에 손상을 입는다는 ‘열 기계피로’ 관련 연구 논문을 접했다. 그게 계기가 돼 위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자는 생각에 ‘피로파괴 전공’으로 포스텍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를 마친 뒤 취업과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옛 현대우주항공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했을 무렵 현대우주항공이 우리나라 최초 액체추진로켓인 ‘KSR-Ⅲ’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며 “액체엔진 시험설비 업무를 담당하면서 발사체와 첫 인연을 맺고 본격적인 연구자 길에 들어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KSR-Ⅲ·나로호 개발 참여… 발사체 전문가로 성장
박 단장은 7년 간 근무한 현대우주항공에서 나와 KSR-Ⅲ 개발에 함께 참여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이직했다.
항우연을 선택했던 이유는 발사체 연구에 보다 집중하고,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자 했던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항우연에 들어와서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통해 국가 우주개발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던 ‘나로호 개발사업’에 합류했다. 그는 나로호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시험평가 업무를 맡았다.
항우연에서 발사체 체계종합 전반에 걸쳐 실무 경험을 쌓고, 주요 구성품을 맡고 있는 여러 연구자와 함께 연구하는 것이 그에겐 새로운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더할나위 없이 매우 의미 있는 기회가 됐다.
박 단장은 “나로호 개발에 참여해 주요 구성품과 2단 로켓 동체 진동시험, 페어링 분리 시험 등을 수행하며 발사체 체계 전반을 더 많이 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가 담당한 1단 로켓 개발에 우리 연구진들이 참여할 수 없어 발사체를 완벽하게 알고자 했던 그의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에 더 매진하는 것 밖에 없었다.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나로호에 대한 아쉬움, 누리호로 달래다
1단 로켓에 대한 아쉬움은 지난 2010년부터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기 시작한 누리호 개발사업 참여를 통해 달랬다.
그는 누리호의 주엔진인 75톤급 액체엔진 성능을 실제 비행을 통해 확인하는 누리호 시험발사체(TLV)의 시스템 업무를 총괄했다.
그는 “2013년 나로호 3차 발사 이후 5년 만에 독자 개발한 75톤 엔진을 장착한 누리호 시험발사체를 쏘는 거라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주변의 걱정과 우려가 컸다”며 “하지만, 2018년 11월 28일 단 한 번의 발사를 통해 성공했던 그 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지금껏 가장 큰 감동으로 제 가슴 속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고 벅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발사체 분야에서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박 단장은 거듭 강조했다.
그는 “발사체는 절대 혼자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하면서 서로 협력의 시너지가 발휘될 때 성공이라는 결실을 거둔다는 점에서 팀워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일까. 박 단장은 인터뷰 내내 ‘누리호’, ‘발사체’, ‘연구자들’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언급했다.
◇혼란한 시기에 단장직 맡아… “기술이전 협상 가장 어려워”
박 단장에게 주어진 발사체 연구 무게감은 점점 커져 2023년 10월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 단장을 맡게 됐다.
당시 발사체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과 함께 누리호 주요 인력의 산업체 이직, 일부 연구자의 기술 유출 등으로 인해 항우연 내부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더불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의 기술이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는 “항우연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단장을 맡아 걱정이 컸다”며 “단장 직전까지 함께 일했던 발사체 인력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다양한 이견으로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화에어로 측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1년 6개월 넘게 길고 길었던 기술이전 협상은 타결돼 지난해 7월 최종 계약을 체결했고, 누리호 4차 발사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박 단장은 “돌이켜 보면 기술이전 협상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면서 “한화에어로와 항우연은 누리호 발사 성공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게 협상 타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짚었다.
◇순조로웠던 WDR로 4차 발사 성공 ‘확신’
박 단장은 지난해 9월 실시한 ‘발사 전 최종 시험’(WDR)의 성공적 수행을 통해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WDR은 발사체를 발사대에 기립시켜 발사체와 발사대 간 시스템 연결 상태를 확인하고, 실제 발사 절차와 동일하게 산화제를 충전·배출해 발사체의 건전성을 점검하는 일종의 ‘발사 리허설’에 해당한다.
누리호 3차 발사 이후 발사체 제작 기업이 바뀌고, 2년 반의 발사 공백으로 참여 기업의 인력 수급 문제와 초기 구성품 품질 이슈 등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하나둘씩 터져 나왔다.
그는 “WDR은 이런 불확실성을 종합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였고, 다행히 예정된 시간에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진행된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성공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발사횟수 늘려 누리호 신뢰도 확보해야”
우리나라가 세계 5대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서 발사체 발사 횟수를 늘려 신뢰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박 단장은 주장했다.
누리호는 올해 5차 발사, 내년 6차 발사까지 예정돼 있다. 7차 발사는 예산 반영을 통해 가능하지만, 2029년부터 달 궤도선을 발사하는 2032년 이전까지 발사 수요가 없어 공백기를 맞게 된다.
그는 “대통령께서 우주청 업무보고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발사를 해야 누리호 신뢰성을 확보해 개도국과 신흥국을 대상으로 해외 발사 수주까지 가능할 것”이라며 “누리호 발사주권 확보와 다양한 발사체 보유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발사 수요를 끊임없이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하반기 예정된 5차 발사에 대한 각오도 밝혔다.
박 단장은 “우리가 제일 조심하고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매너리즘이다. 1차부터 4차 발사까지 모두 성공해 ‘5차 발사도 성공하지 않겠어’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미래 발사체 인력 양성 확대와 항우연 연구자 처우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발사체는 발사 수행 과정에서 숱한 실패와 실수, 시행착오를 통해 많이 배울 수 있는 분야인 만큼 마지막까지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이준기의 D사이언스박종찬 항우연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단장
한참 무더웠던 1992년 8월 11일. 이날은 우리나라 우주개발 역사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인공위성 기술 자립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발사에 성공한 날이다. 당시 우리별 1호 발사 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대학교 1학년의 까 손오공게임 까머리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우리별 1호 발사를 보고, 원래 꿈꿨던 기계공학 분야 연구자 대신 우주 분야 연구자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갔고, 취업도 우주항공 분야 국내 대기업에 했다.
소위 ‘우리별 1호 키즈’로 등극한 셈이다. 그리고 24년의 시간이 훌쩍 흐른 그는 바다신2다운로드 누리호 4차 발사의 총책임자를 맡아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 서막을 알리며 국내 우주개발 역사에 새 페이지를 장식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주인공이 바로 박종찬(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누리호) 고도화사업단장이다.
박 단장은 “발사체는 다른 연구 분야와 달리 엄청난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한 번의 발사로 온 국민들 릴게임다운로드 로부터 성공이냐 실패냐를 평가를 받기 때문에 매우 부담스러우면서도 상당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커다란 기계장치로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과 환희를 줄 수 있는 분야가 ‘우주 발사체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그는 발사체의 특별함에 대해 부여했다.
지난해 11월 27일 누리호 4차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곧바로 5차 릴게임종류 발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박 단장은 “누리호가 성공한 덕분에 연구진들이 5차 발사라는 또다른 기회를 얻게 됐다”며 “발사 성공을 확인한 순간 속으로 누리호에 ‘고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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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우리별 1호가 키워준 ‘우주’와의 인연
박 단장의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다. 그 꿈이 바뀐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과학자가 되고자 했던 열망과 의지가 그만큼 확고했다.
그는 물리과목 중 역학(力學) 분야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져 포스텍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박 단장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주에 관심이 없었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우리별 1호 발사 성공을 TV로 지켜보면서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인공위성이 극한 우주환경의 영향으로 기체에 손상을 입는다는 ‘열 기계피로’ 관련 연구 논문을 접했다. 그게 계기가 돼 위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자는 생각에 ‘피로파괴 전공’으로 포스텍 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를 마친 뒤 취업과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옛 현대우주항공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했을 무렵 현대우주항공이 우리나라 최초 액체추진로켓인 ‘KSR-Ⅲ’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며 “액체엔진 시험설비 업무를 담당하면서 발사체와 첫 인연을 맺고 본격적인 연구자 길에 들어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KSR-Ⅲ·나로호 개발 참여… 발사체 전문가로 성장
박 단장은 7년 간 근무한 현대우주항공에서 나와 KSR-Ⅲ 개발에 함께 참여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이직했다.
항우연을 선택했던 이유는 발사체 연구에 보다 집중하고,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자 했던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항우연에 들어와서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통해 국가 우주개발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던 ‘나로호 개발사업’에 합류했다. 그는 나로호 전체 시스템에 대한 시험평가 업무를 맡았다.
항우연에서 발사체 체계종합 전반에 걸쳐 실무 경험을 쌓고, 주요 구성품을 맡고 있는 여러 연구자와 함께 연구하는 것이 그에겐 새로운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더할나위 없이 매우 의미 있는 기회가 됐다.
박 단장은 “나로호 개발에 참여해 주요 구성품과 2단 로켓 동체 진동시험, 페어링 분리 시험 등을 수행하며 발사체 체계 전반을 더 많이 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가 담당한 1단 로켓 개발에 우리 연구진들이 참여할 수 없어 발사체를 완벽하게 알고자 했던 그의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에 더 매진하는 것 밖에 없었다.
박종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 사진=황응준 프리랜서.
◇나로호에 대한 아쉬움, 누리호로 달래다
1단 로켓에 대한 아쉬움은 지난 2010년부터 독자적인 우주 발사체를 개발하기 시작한 누리호 개발사업 참여를 통해 달랬다.
그는 누리호의 주엔진인 75톤급 액체엔진 성능을 실제 비행을 통해 확인하는 누리호 시험발사체(TLV)의 시스템 업무를 총괄했다.
그는 “2013년 나로호 3차 발사 이후 5년 만에 독자 개발한 75톤 엔진을 장착한 누리호 시험발사체를 쏘는 거라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주변의 걱정과 우려가 컸다”며 “하지만, 2018년 11월 28일 단 한 번의 발사를 통해 성공했던 그 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지금껏 가장 큰 감동으로 제 가슴 속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고 벅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발사체 분야에서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박 단장은 거듭 강조했다.
그는 “발사체는 절대 혼자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하면서 서로 협력의 시너지가 발휘될 때 성공이라는 결실을 거둔다는 점에서 팀워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일까. 박 단장은 인터뷰 내내 ‘누리호’, ‘발사체’, ‘연구자들’이라는 키워드를 자주 언급했다.
◇혼란한 시기에 단장직 맡아… “기술이전 협상 가장 어려워”
박 단장에게 주어진 발사체 연구 무게감은 점점 커져 2023년 10월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 단장을 맡게 됐다.
당시 발사체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과 함께 누리호 주요 인력의 산업체 이직, 일부 연구자의 기술 유출 등으로 인해 항우연 내부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더불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의 기술이전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는 “항우연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단장을 맡아 걱정이 컸다”며 “단장 직전까지 함께 일했던 발사체 인력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다양한 이견으로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화에어로 측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1년 6개월 넘게 길고 길었던 기술이전 협상은 타결돼 지난해 7월 최종 계약을 체결했고, 누리호 4차 발사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박 단장은 “돌이켜 보면 기술이전 협상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면서 “한화에어로와 항우연은 누리호 발사 성공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던 게 협상 타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짚었다.
◇순조로웠던 WDR로 4차 발사 성공 ‘확신’
박 단장은 지난해 9월 실시한 ‘발사 전 최종 시험’(WDR)의 성공적 수행을 통해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다.
WDR은 발사체를 발사대에 기립시켜 발사체와 발사대 간 시스템 연결 상태를 확인하고, 실제 발사 절차와 동일하게 산화제를 충전·배출해 발사체의 건전성을 점검하는 일종의 ‘발사 리허설’에 해당한다.
누리호 3차 발사 이후 발사체 제작 기업이 바뀌고, 2년 반의 발사 공백으로 참여 기업의 인력 수급 문제와 초기 구성품 품질 이슈 등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하나둘씩 터져 나왔다.
그는 “WDR은 이런 불확실성을 종합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였고, 다행히 예정된 시간에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진행된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성공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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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사횟수 늘려 누리호 신뢰도 확보해야”
우리나라가 세계 5대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서 발사체 발사 횟수를 늘려 신뢰도를 높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박 단장은 주장했다.
누리호는 올해 5차 발사, 내년 6차 발사까지 예정돼 있다. 7차 발사는 예산 반영을 통해 가능하지만, 2029년부터 달 궤도선을 발사하는 2032년 이전까지 발사 수요가 없어 공백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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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반기 예정된 5차 발사에 대한 각오도 밝혔다.
박 단장은 “우리가 제일 조심하고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매너리즘이다. 1차부터 4차 발사까지 모두 성공해 ‘5차 발사도 성공하지 않겠어’라는 안일한 마음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주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미래 발사체 인력 양성 확대와 항우연 연구자 처우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발사체는 발사 수행 과정에서 숱한 실패와 실수, 시행착오를 통해 많이 배울 수 있는 분야인 만큼 마지막까지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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