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만세운동 유인물이 발각돼 서울 종로경찰서에 체포된 지 9일 만에 촬영한 민창식의 초췌한 모습. 임경석 제공


서울 종로구에 ‘율곡로3길’이 있다. 서울공예박물관 입구부터 정독도서관 앞까지 이르는 440m 길이의 도로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1차선 도로 양편에 인도가 조성돼 있다. 박물관과 학교, 도서관, 카페가 어우러진,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이 길은 ‘감고당길’이라고도 불린다. 길가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건축물 감고당(感古堂)을 기념하기 위해, 종로구청이 2016년에 그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
감고당은 원래 온라인골드몽 17세기 권신 민유중(閔維重)의 저택이었다. 이 집은 드높은 신분의 두 여성으로 인해 유명해졌다. 한 사람은 숙종 임금의 왕비이자 저택 주인의 딸인 인현왕후다. 권력투쟁에 실패해 왕비 지위가 박탈됐을 때, 그는 친정인 이 저택에서 5년간 거처했다. 다시 복위되어 왕비 신분을 되찾기까지 그랬다. 다른 한 사람은 19세기 고종 임금의 왕비인 명성왕후다. 명성 릴게임몰 왕후는 왕비에 책봉되기 전 8년간 이 집에서 살았다. 한 건물에서 왕비를 둘이나 배출했으니 유명할 만하다.
인현왕후 친정이기도 한 감고당
이 건물에 살았던 이들 가운데 역사적 사건에 연관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람이 있다. 두 왕비처럼 신분이 높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공장 노동자의 일원이었다. 그는 공공선을 위해 자 바다이야기릴게임 신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했다. 일제 식민 통치 시기인 1926년 6·10 만세운동을 전국적 대규모 항일시위로 확장하고자 헌신한 사람이었다. 왕비들은 신분이 고귀했지만, 이 사람은 도덕적 수준이 고귀했다. 바로 민창식(閔昌植)이다.
6·10 만세운동 당시 감고당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내력을 잘 아는 박래원의 증언에 귀 기울여보자.
릴게임골드몽 “(1926년) 5월23일부터 인쇄를 시작하여 31일까지 주야로 1주일 만에 무사히 10만 매 인쇄를 마쳤는데, 안국정 36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위조지폐를 박는다고 혐의하므로, 감고당(感古堂) 민동지의 집으로 옮겨서 인쇄를 계속하여 끝마쳤다.” -박래원, ‘6·10운동의 회상’, 조선일보 1954년 6월14일
유인 골드몽 물 10만 장을 인쇄했다는 언급에 눈길이 간다. 왜 이처럼 많은 분량의 인쇄물이 필요했을까? 만세운동의 전국적 확산을 꾀하려면 조직과 선전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박래원의 증언에 따르면, 13개 도에 걸쳐서 58개 도시가 사전에 조직화됐다. 그들에게 선전·선동의 수단을 제공해야 했다. 시위 군중을 이끌 수 있는 선언문과 격문이 필요했다.
어떤 방법으로 다량의 반일 인쇄물을 만들 수 있을까? 과연 그 일이 가능하기는 했을까? 인쇄 설비를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었다. 비밀리에 은밀하게 일해야만 했다. 인쇄 설비의 구매와 이동은 엄격한 감시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예컨대 등사기는 비교적 저렴하고 간편하게 다량의 문서를 복사할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일본 경찰은 그것을 엄격히 통제했다. 혹여 면사무소나 보통학교에 소장 중인 등사기가 도난이라도 당했다면, 그것은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니라 엄중한 시국사건으로 간주됐다.
10만 장 인쇄물은 등사기로는 어림없는 분량이었다.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했다. 결국 일본인이 경영하는 시내 중심가의 활판제조소에서 값비싼 활판인쇄기를 공공연하게 구매하는 길을 택했다. 인쇄소를 경영하는 경기도 수원의 자영업자로 위장해 소형인쇄기 2대를 사는 데 성공했다. 5월19일의 일이었다. 운송도 문제였다. 명치정(명동)에서 황금정(을지로) 입구, 안국동 광장, 안국동 36번지까지 소달구지를 세 번 바꿔가면서 운반했다. 설혹 경찰에게 정보가 누설되더라도 행방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열흘도 안 돼 전국적 시위 선전 수단 확보



6·10 만세운동 유인물 10만 장을 인쇄한 1926년 당시의 감고당 모습. 퇴락한 모습이 역력하다. 동아일보 1927년 4월3일 5면.


비밀리에 인쇄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첫 인쇄처는 안국동 36번지였다. 비어 있는 집이었으므로, 동지 백명천의 명의로 세를 얻었다. 하숙집을 운영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인쇄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비밀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샀다. 위조지폐를 인쇄하는 것 같다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쳤다.
박래원의 증언에 따르면, 가까운 곳에 있는 안국동 26번지 감고당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감고당 민동지의 집’으로 긴급히 인쇄 시설을 옮겼다. ‘민동지’란 다름 아닌 민창식을 가리킨다.
감고당은 ‘두 대의 인쇄기를 갖춘 지하 인쇄소’ 구실을 너끈하게 감당했다. 이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인쇄 작업이 이뤄졌다. 6월10일이 순종 장례식이 거행되는 날이므로, 어떻게든 그 전에 10만 장 인쇄를 마쳐야 했다. 5월23일 시작된 인쇄 작업은 5월31일에 이르러 마침내 종료됐다. 이로써 전국적인 항일시위운동을 전개할 수단 가운데 하나가 갖춰지게 됐다.
어떤 인쇄물이 만들어졌는가? 6·10 만세운동을 겨냥해서 제작된 유인물은 도합 7종이었다. 그중 5종이 감고당에서 인쇄됐다. 대한독립당 명의의 ‘격고문’을 비롯해, 대한학생회 명의의 ‘조선인 교육은 조선인 본위로’, 조선농민의용단 명의의 ‘산업을 조선인 본위로’가 제작됐다. 그 외에 다른 두 개는 구호 위주의 전단이었다. ‘대한독립만세!’ ‘대한 독립운동자여 단결하라!’ 등의 구호였다. 대한 독립을 표방하고 민족통일전선 구호를 내세웠음이 눈에 띈다. 사회주의자들이 만들었음에도 공산당을 드러내지 않고 그 대신 대한독립당을 전면에 세우고 있음이 특징적이다. 민족통일전선 정책이 완숙 단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감고당의 대저택 면모는 이 시기에 퇴색돼 있었다. 1926년 당시 이 저택의 소유주는 민영익의 아들 민정식(閔廷植)이었다. 그는 아버지 유산을 물려받은 장안의 거부였지만, 감고당은 잘 관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지금은 이 집이 빈민굴같이 되었습니다”라는 기록마저 남아 있다.1
민창식이 감고당에 거주하게 된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도 여흥 민씨 가문의 일족이라는 요소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감고당은 결국 1927년 1월에 매각되면서 여흥 민씨와의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세도가 민씨 집안 혈육의 13살 소년공
6·10 만세운동 당시 민창식은 28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가 직접 작성한 ‘자서전’에 따르면, “아버지는 구조선 정부의 군수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부친은 내 나이 9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2 이 진술이 맞는다면 그의 부친은 1907년에 사망한 셈이다. 아버지가 여흥 민씨 일족에 군수까지 지냈다면 아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자서전’을 더 읽어보자. “어머니는 비합법적인 아내였다. 내가 태어난 뒤 아버지의 버림을 받았고, 자신의 손노동으로 우리를 부양했다”는 문장이 뒤를 잇는다. ‘비합법적인 아내’라는 표현으로 미뤄볼 때 본처는 아니었던 것 같다. 버림받았다는 표현을 보니, 첩으로도 간주되지 못했던 것 같다. ‘손노동’이란 삯바느질을 가리켰으리라. 돈을 받고 바느질 일을 해주는 임노동이었다. 일본 경찰의 감시 문서에는 1926년에도 여전히 모친 송씨가 감고당에서 함께 거주하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민창식은 13살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얼음 판매 가게의 점원, 담배공장 직공을 거쳐서 우연히 인쇄소에 취직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평생 인쇄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대동인쇄주식회사, 매일신보사 등에서 인쇄직공으로 일했다. 그는 식자공이었다. 손으로 쓴 타인의 원고를 판독하고 활판에 납활자를 끼워넣는 노동을 감당하려면 한문과 한글을 식별할 수 있어야 했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민창식의 ‘자서전’. 원본은 조선어로 작성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임경석 제공 


그랬다. 민창식은 서당에서 한문 교육을 받았고, 짧으나마 1년간 근대교육도 이수했다. 중동학교에서 1년간 수학한 경험이 있었다. 일본어도 알았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한문, 일본어, 조선어 3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에 힘입어 사회·경제·정치 문제에 관한 소책자들을 이용해 독학하는 데 열심이었다고 한다.
그는 노동조합 운동에 뛰어들었다. 경성인쇄직공조합에 가입했고, 1925년 4월에는 그 단체의 집행위원으로 선임됐다. 조직만이 아니었다. 실제 투쟁에도 앞장섰다. 그해 8월 대동인쇄주식회사 직공 파업에 개입하여,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을 이끌었다. 파업 노동자 쪽을 대표해 2명의 교섭위원으로 선임될 만큼 현장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민창식은 인쇄노동자를 넘어 여러 직종의 노동자 연합단체를 결성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 인쇄, 양말, 양화, 철공, 식수배달부 등 5개 직종의 노동자를 규합해 경성노동연맹회를 결성했다. 그 단체의 집행위원이 됐다.
일본 경찰 요시찰 대상… “사상·노동운동 분주”
그는 외연을 확장했다. 인쇄직공청년동맹이라는 청년단체를 조직했고, 그를 기반으로 서울 전체의 청년운동을 관할하는 한양청년연맹이라는 단체에 간여했다. 결국 그 단체의 간부(검사위원)가 됐다. 그는 노동운동과 청년운동의 경계를 넘어섰다. 1925년에는 을축년 대홍수로 고통받는 이재민 구호운동에 참여했다. 반기독교 운동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기독교주일학교 대회가 열리자 그에 맞서서 반기독교 강연회를 개최하고 반기독교 단체를 조직하는 일에 나섰다.
이 때문에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민창식은 요시찰 대상자로 지목됐고, 경찰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경찰은 그를 가리켜 “각 방면 사상, 노동운동에 분주”하고, 인쇄직공 노동운동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기재했다.3
민창식은 합법적 공개 위상에만 머물지 않았다. 비밀결사 운동에도 기꺼이 가담했다. 1924년 비밀결사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했고, 이듬해에는 조선공산당에도 입당했다. 사회주의 비밀결사 내에서도 그는 점차 지도적 지위에 올랐다. 인쇄직공 야체이카(‘세포조직’을 뜻하는 러시아어)의 책임자, 공산당 서울시당 집행위원 등과 같은 중책을 맡기에 이르렀다.
유인물 10만 장 제작이라는 난제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꼽아야 하는 것은 헌신성이었다. 합법·비합법을 가리지 않는 혁명운동에의 헌신이 그러한 힘을 낳았다.
1. ‘내 동리 명물, 안국동 感故堂’, 동아일보 1924년 6월25일
2. Журавлев(주라블레프), Автобиография(자서전), 1932년 9월3일, РГАСПИ ф.495 оп.228 д.290 л.3
3. ‘민창식’, 왜정시대인물사료 1, 153~154쪽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독립운동 열전’ 저자
*임경석의 역사극장: 한국 사회주의 운동사의 권위자인 저자가 한국 근현대사 사료를 토대로 지배자와 저항자의 희비극적 서사를 풀어내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