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사이트, 모바일로 즐기는 슬롯의 새 시대
작성자: 선강보한
등록일: 26-01-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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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no1reelsite.com
ⓒ시사IN 조남진
지난 호(〈시사IN〉 제955호 ‘‘남성 차별 의식’에 관한 7년 만의 새로운 대답’ 기사 참조)에 제시한 핵심 발견을 요약하며 시작하자. 첫째, ‘남성 차별’ 의식은 이제 청년 남성을 넘어 한국 남성 전체가 공유한다. 둘째, 그러나 ‘남성 차별’이라는 말 안에는 크게 다른 두 가지 의미가 뒤섞여 있다. 한국 사회가 구조적 남성 차별 사회라는 강한 주장이 첫 번째이고, 한국 사회에는 여성이 그렇듯 남성도 불리한 영역이 있다는 온건한 주장이 두 번째다. 우리의 20 릴게임손오공 19년 시리즈를 포함해, 그동안 제기된 거의 모든 남성 차별 분석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았다. 2025년 조사가 둘을 구별해 질문하니, 대부분 남성들의 차별 의식은 강한 주장이 아니라 온건한 주장, ‘남녀 분야별 유불리론’이었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전체 남자는 물론 청년 남자 그룹에서도 소수의견이다.
황금성슬롯두 번째 발견이 왜 중요한지는 이재명 대통령이 절실히 느낄 것이다. 2025년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대목이 우리 논의와 밀접해서 길게 인용할 가치가 있다. “사회 전체 구조로 보면 여성이 차별받는 집단이 분명하다. 하지만 남성들이 특정 영역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는데 그 논의를 공식적으로 어디에서도 안 릴게임추천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기로 했으니, 어쨌든 여성정책을 주로 하시긴 하겠지만, 특정 부분에서의 남성들 차별을 연구하고 대책을 만드는 방안을 점검해주시기 바란다.”
대통령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
이 발언에는 날카로운 포착과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씩 들어 오징어릴게임 있다. 첫째로 날카로운 포착. 다수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렇게 주장하는 중이다. 포괄적 여성 차별 구조를 인정하더라도, 남성이 불리한 특정 영역에 정책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돌봄과 교육 분야를 더 전공하도록 지원하는 게 여성 차별을 강화하는 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확인한 ‘남녀 분야별 바다이야기오리지널 유불리론’의 정책가 버전이다. 우리는 남녀 모두 다수가 이 관점에 선다는 걸 지난 호 기사에서 확인했다.
2025년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둘째로 치명적인 실수. 대통령은 ‘차별’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 순간 그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분야별로 따로따로 다루기’는 작동할 수 없다. 어느 한 성이 차별받는다고 말하는 순간 반대편 성은 강자의 위치, 차별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이런 걸 수학자들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부른다. 나의 이익과 상대의 손해(혹은 나의 손해와 상대의 이익)를 합치면 언제나 ‘0’이 되는 게임이다. 크기가 정해진 파이를 둘이서 나누는 문제. 한 명의 승자를 양자택일하는 문제가 제로섬 게임이다. ‘논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은 합이 언제나 ‘0’이라는 규칙이 없는 게임을 말한다.
대통령은 분명 논제로섬 구도를 원했다. ‘분야별로 따로따로 다루기’는 전형적인 논제로섬 구도 짜기다. 하지만 이 문제에 차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어느 한쪽을 보살피는 일이 반대쪽을 공격하는 제로섬 구도를 피할 수 없다.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는 여성 차별이라는 핵심 가치를 내려놓을 수 없다. 진보 성향 언론의 방향성도 비슷해서, 2025년 6월10일 국무회의 발언은 회의록 공개 이후 진보 성향 언론의 포화를 맞았다.
이것은 단순히 메시지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이 주제를 다루는 개념 틀 정의에 실패한 결과다. 남자들이 말하는 “차별”이,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그 ‘차별’이 아니라는 결정적 구분이 빠졌다. 대통령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이 구분에 기반한, 잘 작동하는 개념 틀이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우리 용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남녀 분야별 유불리론을 제기하는 남자들 말을 좀 진지하게 들어보고, 구체적 사안별로 대책도 세워봐라. 정책이 이런 목소리에 답하는 게 왜 여성 차별이냐? 오히려 그렇게 해야 이 온건한 다수가 ‘구조적 남성 차별론’에 합류하지 않을 거 아니냐.”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소수의견이다(전체 응답자 중 11%, 20대 남자 중 23%). 문제는 ‘남녀 분야별 유불리론’을 제기하는 다수 남성이 ‘구조적 남성 차별론’에 합류할 때 생긴다. 이때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실제 지지 기반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사실 이 소수의견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방법은 이 길뿐이다.
어떨 때 합류가 일어나고, 어떨 때 온건파가 극단파와 분리되는가. 〈그림 1〉과 〈그림 2〉는 2021년 〈시사IN〉의 ‘20대 여자’ 시리즈에 등장하는 데이터다. 질문은 다음 두 경우를 비교한다. 첫째, 실제 성범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 둘째, 성범죄 사실이 없는 사람이 처벌받는 경우(무고). 20대 남자는 성범죄자 처벌 실패보다 무고가 더 흔하고, 더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20대 여자는 무고보다 성범죄자 처벌 실패가 더 흔하고, 더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두 이슈는 청년 남녀의 온라인 충돌에서 단골 주제다. 2021년 질문은 이 충돌을 구현하려고 보기를 양자택일로 구성해서 ‘제로섬화’했다. 이렇게 하면 청년 남녀의 상황 인식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2025년 조사에서 우리는 제로섬과 논제로섬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2021년 질문을 둘로 쪼갰다. 성범죄 근절에 대해, 그리고 무고죄 처벌 강화에 대해 따로 물어봤다.
여성 폭력과 성 착취를 근절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한지 물었다(〈그림 3〉). 20대 남자도 74%가 필요하다고 답한다. 필요 없다는 응답이 15%인데, 이 정도면 ‘강한 정체성 남자’도 일부가 결집에서 이탈해야 나오는 숫자다.
〈그림 4〉는 무고죄를 다룬다. 여성계나 온라인 일각에서는 무고죄 강화 요청을 “여성 차별 구조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다. 무고죄가 강화되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나서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제로섬 문제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주제는 강한 젠더 균열을 나타내리라 예상할 수 있지만, 결과는 반대다. 20대 여자도 71%가 무고죄 처벌 강화에 찬성한다.
형사제도를 여론조사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 분석은 무고죄 강화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심사는 제로섬 구도와 논제로섬 구도가 여론에 끼치는 효과를 비교하는 일이다. 양자택일 문제가 될 때, 응답의 성별 격차는 뚜렷해진다. 문제를 개별화해서 논제로섬 구도를 만들면, 성별 격차는 줄어들고 합의에 가까워진다. 무고죄 문제는 엘리트들이 제로섬 구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성들 다수는 이걸 성범죄와 비교하지 않고 따로 질문하면 논제로섬 문제로 받아들인다.
지금부터는 2025년 조사 내에서 제로섬 질문과 논제로섬 질문을 비교할 것이다. 그래프는 20대와 30대를 통합해서 그렸다. 청년 남녀의 의견을 비교하는 데는 그편이 낫다(앞으로 나올 이슈에서 20대와 30대의 의견 차는 크지 않다).
남녀 임금 격차 문제를 보자(〈그림 5〉). 임금격차 축소 지원 정책 찬반을 물으면 청년 남성들은 정부가 개입해 노동시장의 남성 우위를 덜어내어 여성에게 주겠다는 얘기로 이해한다. 임금격차 축소라는 거의 당위적인 의제를 던져도 2030 남성은 “필요하지 않다” 응답이 더 많다. 제로섬 구도의 위력이다. 40세 이상 남성은 “필요하다” 응답이 높아서, 전 세대 성별에서 청년 남성들만 반대 방향이다.
그런데 〈그림 6〉을 보자. 출산과 육아로 생기는 경력 단절 문제는 남녀 임금격차의 중요한 원인이다. 경력 단절 여성을 지원하는 정책을 물어보면, 청년 남성의 지지율이 70%로 크게 오른다. 우리는 이것을 의제가 ‘논제로섬화’된 중요한 사례, 실질적인 내용과 효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로섬 구도를 논제로섬으로 바꾼 사례로 제시한다.
〈그림 7〉도 비슷하다. 고임금 일자리가 많은 엔지니어 등의 직종에 여성 진출이 부진하다. 남녀 임금격차의 또 다른 원인이다. 여러 나라에서 대학 전공부터 여성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을 택하도록 지원하는 정책 등을 많이 쓴다. 청년 남성에게 이런 촉진 정책을 제시하면, 〈그림 6〉보다는 약하지만, “필요하다” 응답이 다수가 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존중받을 의견과 고립시킬 의견
군대는 또 다른 젠더 갈등의 급소다. 군 가산점제 부활을 물어보면 청년 남녀의 의견은 반대로 갈린다(〈그림 8〉). 군 가산점제는 누군가 (채용에) 붙으면 누군가 떨어지는 전형적인 제로섬 문제다. 이 문제는 기성세대 여성들의 의견도 부활 찬성 쪽이어서, 청년 여성들만 의견 방향이 반대다.
〈그림 9〉와 〈그림 10〉은 논제로섬 문제로 바꿔본 것이다. 제대 군인 사회출발자금에 대해, 공공부문 채용이나 승진 시 군 경력 인정 문제에 대해, 청년 여성의 지지율은 각각 40%와 44%다. 군 가산점제 부활 지지율(31%) 대비 유의미한 상승이다. 하지만 극적인 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군대 문제를 논제로섬 구도로 바꾸는 건 다른 이슈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결론이다. 〈그림 11〉을 다시 보자. 지난 호에 제시한 ‘6개 스펙트럼 모델’이다. 이 스펙트럼에서 최대한 다수의 합의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슈를 ‘논제로섬화’해야 한다. 이슈가 제로섬 구도로 제시될 때 온건한 다수의견과 강경한 소수의견은 합류한다. 이것은 대화 가능성 그 자체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원칙이지만,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남자들이 말하는 ‘남성 차별’의 두 갈래 결을 구분해, 존중받을 의견과 고립시킬 의견을 분리하는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은 다르다.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차별’과, 남자들이 말하는 “차별”이 같은 거라고 너무 쉽게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둘은 다르다.
정책가들은 어떻게 문제를 논제로섬화할 수 있는가? 첫째, 포괄적 의제는 피하고 구체적 의제를 잡아야 한다. 포괄적 의제는 “결국 누가 더 차별받는가” 식의 양자택일로 흘러가서 문제를 제로섬화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남성들이 특정 영역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에 대한 논의, 그 부분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요구할 때, 그는 바로 이걸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념 틀이 명확하지 않아서 ‘차별’ 개념이 걸러지지 않았다. 지시를 받는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차별’로 이해하는 순간 딜레마에 빠져 움직이지 못한다. 저 국무회의 이후 반년 동안 여성가족부–성평등가족부에서 일어난 일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둘째, 6개 스펙트럼 전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문제의 열쇠는 강한 정체성 그룹이 쥔 게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옆, 온건한 청년 그룹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이 다수의견에 합류하면 5대 1 구도가 되고 강한 합의가 이뤄진다. 반대로 이들이 강한 정체성 그룹에 합류하면 2대 4 구도라고 해도 청년끼리는 결집된 상태이므로 ‘2’의 저항이 강력한 교착상태로 간다. 비록 ‘2대 4’ 구도라도 청년 남성 혹은 여성이 뭉친 강한 반대를 뚫고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셋째, 정부가 개입해 한쪽의 우위를 다른 쪽으로 직접 옮기는 정책은 문제를 제로섬화할 위험이 있다. 목표를 바꾸라는 게 아니라, 추구하는 방법을 가능한 한 논제로섬화해야 한다. 여성을 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으로 유도하는 정책은 남성 차별이 아니다. 남성을 돌봄과 교육 전공으로 유도하는 정책은 여성 차별이 아니다. 군 경력에 보상하는 일 그 자체는 여성 차별이 아니다. 이것을 여성의 일자리 진입이나 커리어 전망을 봉쇄하는 식으로 설계하는 게 여성 차별이다. 군 가산점 제도는 이 요소가 강해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군 경력에 보상하면 여성 차별이라서 위헌이 난 게 아니다.
넷째, 애초에 논제로섬인 문제를 제로섬화하는 정책가도 있다. 없는 문제를 키우는 꼴이다. 한 성별에 대한 법적 보호나 사회경제적 지원을 다른 성별에 대한 차별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경력 단절 여성 지원을 남성 차별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청년 남성의 자살이나 산업재해 문제를 돌보는 정책이 여성 차별이 될 수는 없다.
젠더 갈등은 운명이 아니다. 6개 스펙트럼 모델로 보면, 이들의 여론 조합은 사안의 성격마다 달라지고, 문제가 제시되는 방식에 따라 또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호에 본 〈그림 12〉로 다시 돌아간다. 한국인의 젠더 태도는 보이는 것만큼 갈등 지향적이지 않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평소에 ‘답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중 적지 않은 수가 합의 영역에 있을 터이다. 어느 한쪽의 명분이 우세한 ‘4대 2’ 구도가 많다. 이런 이슈를 정책가들이 더 논제로섬화하면 ‘5대 1’의 강한 합의를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제안은 급진적 중도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노선이다. 왜 중도주의인가? 우리는 구조적 남성 차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조사 응답자의 84%가 그렇듯이 말이다. 우리 조사 응답자 중 2030 남성의 77%가 그렇듯이 말이다. 이 주장을 내놓는 강한 정체성 남자들의 말을 잘 듣는다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민주당 계열에서 잊을 만하면 나오는 ‘청년 남성 경청론’은 남자 말을 들어서 문제가 아니라, 다수 남자들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문제다. 개념 틀 없이 귀만 열면 다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게 된다.
또한 우리는 구조적 여성 차별 현실을 잘 교육하면 결국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남자들을 가르치자!” 접근법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 없다. 청년 남성의 이념적 보수화는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먼저인가? 〈그림 13〉은 2019년과 2025년 조사에서 20대 남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주관적 이념 성향이다. 2019년에는 이념적 보수화 없이 젠더 강경 태도가 먼저 출현했다. 두 조사만으로 결론 내기는 무리이지만, 젠더의 강경 태도가 먼저고, 그 주장을 진보가 외면하고 보수가 수용하면서 이념적 보수화가 뒤따랐을 가능성이 있다. 2019년에는 젠더 태도만 있었다면, 지금은 젠더 태도와 이념 성향이 한 묶음이다. 더 단단해졌다.
이런 ‘밀어내기’는 청년을 넘어 기성세대 남성에게도 작동한 것 같다. 〈그림 14〉와 〈그림 15〉는 세대별로 페미니즘 지수를 표시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0점이 중립이고, -12점이 가장 부정적, +12점이 가장 긍정적 태도다. 2019년에는 2030 남성이 페미니즘 이미지 악화를 주도했다. 지금은 40대 남성도 2030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
우리의 핵심 접근법은 이렇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불리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상식을 말하기. 온라인 반응이 어떻게 나오든 이 상식에 남녀 사이 폭넓은 합의가 있음을 강조하기. 구조적 남성 차별론과 이 상식적 온건론을 명확히 구분하고 분리하기. 의제를 포괄하지 말고 구체화하기. 논제로섬화하기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고립시키고, 남녀 상호 유불리론은 공론장에 초대하며, 포괄적 질문은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정책가들은 개별 사안을 따로 다루어,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구체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실용적 접근을 선호한다. 문제를 논제로섬화하여 여론 스펙트럼에서 최대 합의를 만들어내고, 그 문제부터 정책으로 풀어가기를 선호한다. 이래서 중도주의다.
중도적 접근법은 왜 급진적인가
그렇다면 왜 급진적인가. 이런 중도적 접근법이 결국 가장 큰 변화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승리할 수 없고,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도 없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반대편으로 밀어내어 교착상태를 강화하는 중이다. 급진성이란 “중도와 멀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를 만들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서는 중도주의가 가장 급진적이다. 남자들이 말하는 “남성 차별”의 의미를 정확히 분별하는 데서 ‘중도’를 구성할 토대가 나온다.
우리는 7년째 이 문제를 다뤄왔기 때문에, 이 분석이 공개된 후 온라인에 등장할 반응을 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남자를 우쭈쭈하는 얘기는 지겹게 들었다. 이제 남자에게 책임을 물어라”라는 논평이, 또 한편에서는 “자기들 때나 있던 여성 차별을 지금 청년 남성에게 책임지라는 스윗 페미”라는 논평이 나올 것이다. 둘이 공존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책임 있는 정책가나 여론 형성자라면 ‘남자를 우쭈쭈하는 스윗 페미’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더 유효한 개념 틀을 가지고 ‘가장 큰 목소리’와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별해내야 한다.
12·3 이후 한국 정치의 극우화 위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의 논지 전개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연구진 중 한 명이면서 이 기사를 쓰는 나는 두 문제가 닮았다고 생각한다. 25% 내외의 강하게 결집된 정체성 그룹만 쳐다보면 안 된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그 옆에 있다. 잠재적 우군이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젠더 문제에서는 온건 남성 차별론의 청년 남성, 그리고 극우화 문제에서는 계엄을 지지하지 않는 보수 지지자들이 핵심이다. 이들이 강경파에 합류하느냐 분리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두 문제를 다루면서 청년 남성 전체를, 보수 지지자 전체를 뭉치도록 만드는 반대 진영 스피커들과 정책가들이 있다. 이들은 실은 문제해결에 관심이 없다. 그렇게 들어 올린 깃발로 자기 진영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관심이 있다. 이들은 문제를 더 풀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조연들이다.
7년 전에 우리는, 남성 역차별이 아니라 ‘남성 차별’ 개념이 새롭게 출현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을 주장하는 ‘강한 정체성 그룹’의 등장을 알렸다. 이번에 우리는, 이들이 말하는 ‘남성 차별’ 슬로건이 7년 동안 다수 남자들을 설득했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이 ‘남성 차별’ 슬로건이 남자들 사이에서 크게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중요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 분별에 기반해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개념 틀을 구축할 때, 젠더 갈등 문제는 지금보다 덜 첨예하고 덜 중요해질 것이다. 반대로 이 분별을 계속해서 놓친다면, ‘남성 차별’ 슬로건에 대한 동의가 결국 ‘구조적 남성 차별론’과 뒤섞여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 길은, 전체는 물론 청년 남자 중에서도 소수인, 구조적 남성 차별론이 주류가 될 유일한 경로다.
우리는 이 결론이 현실을 오래 관찰한 결과이고, 객관적 근거로 뒷받침될 수 있으며,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책임 있는 태도라고 믿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 결론이 대단히 논쟁적일 거라는 점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번 더 밝혀둔다. 이것은 조사를 의뢰한 국민통합위원회의 공식 의견이 아니고, 조사를 기획하고 분석한 정한울과 천관율의 결론이다.
천관율 (언론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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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시사IN〉 제955호 ‘‘남성 차별 의식’에 관한 7년 만의 새로운 대답’ 기사 참조)에 제시한 핵심 발견을 요약하며 시작하자. 첫째, ‘남성 차별’ 의식은 이제 청년 남성을 넘어 한국 남성 전체가 공유한다. 둘째, 그러나 ‘남성 차별’이라는 말 안에는 크게 다른 두 가지 의미가 뒤섞여 있다. 한국 사회가 구조적 남성 차별 사회라는 강한 주장이 첫 번째이고, 한국 사회에는 여성이 그렇듯 남성도 불리한 영역이 있다는 온건한 주장이 두 번째다. 우리의 20 릴게임손오공 19년 시리즈를 포함해, 그동안 제기된 거의 모든 남성 차별 분석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았다. 2025년 조사가 둘을 구별해 질문하니, 대부분 남성들의 차별 의식은 강한 주장이 아니라 온건한 주장, ‘남녀 분야별 유불리론’이었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전체 남자는 물론 청년 남자 그룹에서도 소수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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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에는 날카로운 포착과 치명적인 실수가 하나씩 들어 오징어릴게임 있다. 첫째로 날카로운 포착. 다수 남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렇게 주장하는 중이다. 포괄적 여성 차별 구조를 인정하더라도, 남성이 불리한 특정 영역에 정책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돌봄과 교육 분야를 더 전공하도록 지원하는 게 여성 차별을 강화하는 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확인한 ‘남녀 분야별 바다이야기오리지널 유불리론’의 정책가 버전이다. 우리는 남녀 모두 다수가 이 관점에 선다는 걸 지난 호 기사에서 확인했다.
2025년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둘째로 치명적인 실수. 대통령은 ‘차별’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 순간 그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분야별로 따로따로 다루기’는 작동할 수 없다. 어느 한 성이 차별받는다고 말하는 순간 반대편 성은 강자의 위치, 차별하는 위치로 이동한다. 이런 걸 수학자들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부른다. 나의 이익과 상대의 손해(혹은 나의 손해와 상대의 이익)를 합치면 언제나 ‘0’이 되는 게임이다. 크기가 정해진 파이를 둘이서 나누는 문제. 한 명의 승자를 양자택일하는 문제가 제로섬 게임이다. ‘논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은 합이 언제나 ‘0’이라는 규칙이 없는 게임을 말한다.
대통령은 분명 논제로섬 구도를 원했다. ‘분야별로 따로따로 다루기’는 전형적인 논제로섬 구도 짜기다. 하지만 이 문제에 차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어느 한쪽을 보살피는 일이 반대쪽을 공격하는 제로섬 구도를 피할 수 없다.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는 여성 차별이라는 핵심 가치를 내려놓을 수 없다. 진보 성향 언론의 방향성도 비슷해서, 2025년 6월10일 국무회의 발언은 회의록 공개 이후 진보 성향 언론의 포화를 맞았다.
이것은 단순히 메시지 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이 주제를 다루는 개념 틀 정의에 실패한 결과다. 남자들이 말하는 “차별”이,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그 ‘차별’이 아니라는 결정적 구분이 빠졌다. 대통령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이 구분에 기반한, 잘 작동하는 개념 틀이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우리 용어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남녀 분야별 유불리론을 제기하는 남자들 말을 좀 진지하게 들어보고, 구체적 사안별로 대책도 세워봐라. 정책이 이런 목소리에 답하는 게 왜 여성 차별이냐? 오히려 그렇게 해야 이 온건한 다수가 ‘구조적 남성 차별론’에 합류하지 않을 거 아니냐.”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소수의견이다(전체 응답자 중 11%, 20대 남자 중 23%). 문제는 ‘남녀 분야별 유불리론’을 제기하는 다수 남성이 ‘구조적 남성 차별론’에 합류할 때 생긴다. 이때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실제 지지 기반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갖게 된다. 사실 이 소수의견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질 방법은 이 길뿐이다.
어떨 때 합류가 일어나고, 어떨 때 온건파가 극단파와 분리되는가. 〈그림 1〉과 〈그림 2〉는 2021년 〈시사IN〉의 ‘20대 여자’ 시리즈에 등장하는 데이터다. 질문은 다음 두 경우를 비교한다. 첫째, 실제 성범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경우. 둘째, 성범죄 사실이 없는 사람이 처벌받는 경우(무고). 20대 남자는 성범죄자 처벌 실패보다 무고가 더 흔하고, 더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20대 여자는 무고보다 성범죄자 처벌 실패가 더 흔하고, 더 심각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두 이슈는 청년 남녀의 온라인 충돌에서 단골 주제다. 2021년 질문은 이 충돌을 구현하려고 보기를 양자택일로 구성해서 ‘제로섬화’했다. 이렇게 하면 청년 남녀의 상황 인식 차이를 드러낼 수 있다. 2025년 조사에서 우리는 제로섬과 논제로섬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2021년 질문을 둘로 쪼갰다. 성범죄 근절에 대해, 그리고 무고죄 처벌 강화에 대해 따로 물어봤다.
여성 폭력과 성 착취를 근절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필요한지 물었다(〈그림 3〉). 20대 남자도 74%가 필요하다고 답한다. 필요 없다는 응답이 15%인데, 이 정도면 ‘강한 정체성 남자’도 일부가 결집에서 이탈해야 나오는 숫자다.
〈그림 4〉는 무고죄를 다룬다. 여성계나 온라인 일각에서는 무고죄 강화 요청을 “여성 차별 구조를 강화하려는 시도”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다. 무고죄가 강화되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나서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다. 제로섬 문제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 주제는 강한 젠더 균열을 나타내리라 예상할 수 있지만, 결과는 반대다. 20대 여자도 71%가 무고죄 처벌 강화에 찬성한다.
형사제도를 여론조사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 분석은 무고죄 강화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심사는 제로섬 구도와 논제로섬 구도가 여론에 끼치는 효과를 비교하는 일이다. 양자택일 문제가 될 때, 응답의 성별 격차는 뚜렷해진다. 문제를 개별화해서 논제로섬 구도를 만들면, 성별 격차는 줄어들고 합의에 가까워진다. 무고죄 문제는 엘리트들이 제로섬 구도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성들 다수는 이걸 성범죄와 비교하지 않고 따로 질문하면 논제로섬 문제로 받아들인다.
지금부터는 2025년 조사 내에서 제로섬 질문과 논제로섬 질문을 비교할 것이다. 그래프는 20대와 30대를 통합해서 그렸다. 청년 남녀의 의견을 비교하는 데는 그편이 낫다(앞으로 나올 이슈에서 20대와 30대의 의견 차는 크지 않다).
남녀 임금 격차 문제를 보자(〈그림 5〉). 임금격차 축소 지원 정책 찬반을 물으면 청년 남성들은 정부가 개입해 노동시장의 남성 우위를 덜어내어 여성에게 주겠다는 얘기로 이해한다. 임금격차 축소라는 거의 당위적인 의제를 던져도 2030 남성은 “필요하지 않다” 응답이 더 많다. 제로섬 구도의 위력이다. 40세 이상 남성은 “필요하다” 응답이 높아서, 전 세대 성별에서 청년 남성들만 반대 방향이다.
그런데 〈그림 6〉을 보자. 출산과 육아로 생기는 경력 단절 문제는 남녀 임금격차의 중요한 원인이다. 경력 단절 여성을 지원하는 정책을 물어보면, 청년 남성의 지지율이 70%로 크게 오른다. 우리는 이것을 의제가 ‘논제로섬화’된 중요한 사례, 실질적인 내용과 효과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로섬 구도를 논제로섬으로 바꾼 사례로 제시한다.
〈그림 7〉도 비슷하다. 고임금 일자리가 많은 엔지니어 등의 직종에 여성 진출이 부진하다. 남녀 임금격차의 또 다른 원인이다. 여러 나라에서 대학 전공부터 여성이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을 택하도록 지원하는 정책 등을 많이 쓴다. 청년 남성에게 이런 촉진 정책을 제시하면, 〈그림 6〉보다는 약하지만, “필요하다” 응답이 다수가 되는 반전이 일어났다.
존중받을 의견과 고립시킬 의견
군대는 또 다른 젠더 갈등의 급소다. 군 가산점제 부활을 물어보면 청년 남녀의 의견은 반대로 갈린다(〈그림 8〉). 군 가산점제는 누군가 (채용에) 붙으면 누군가 떨어지는 전형적인 제로섬 문제다. 이 문제는 기성세대 여성들의 의견도 부활 찬성 쪽이어서, 청년 여성들만 의견 방향이 반대다.
〈그림 9〉와 〈그림 10〉은 논제로섬 문제로 바꿔본 것이다. 제대 군인 사회출발자금에 대해, 공공부문 채용이나 승진 시 군 경력 인정 문제에 대해, 청년 여성의 지지율은 각각 40%와 44%다. 군 가산점제 부활 지지율(31%) 대비 유의미한 상승이다. 하지만 극적인 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군대 문제를 논제로섬 구도로 바꾸는 건 다른 이슈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결론이다. 〈그림 11〉을 다시 보자. 지난 호에 제시한 ‘6개 스펙트럼 모델’이다. 이 스펙트럼에서 최대한 다수의 합의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슈를 ‘논제로섬화’해야 한다. 이슈가 제로섬 구도로 제시될 때 온건한 다수의견과 강경한 소수의견은 합류한다. 이것은 대화 가능성 그 자체를 결정할 만큼 중요한 원칙이지만,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남자들이 말하는 ‘남성 차별’의 두 갈래 결을 구분해, 존중받을 의견과 고립시킬 의견을 분리하는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은 다르다.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차별’과, 남자들이 말하는 “차별”이 같은 거라고 너무 쉽게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둘은 다르다.
정책가들은 어떻게 문제를 논제로섬화할 수 있는가? 첫째, 포괄적 의제는 피하고 구체적 의제를 잡아야 한다. 포괄적 의제는 “결국 누가 더 차별받는가” 식의 양자택일로 흘러가서 문제를 제로섬화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남성들이 특정 영역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영역에 대한 논의, 그 부분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요구할 때, 그는 바로 이걸 시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념 틀이 명확하지 않아서 ‘차별’ 개념이 걸러지지 않았다. 지시를 받는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익숙한 ‘차별’로 이해하는 순간 딜레마에 빠져 움직이지 못한다. 저 국무회의 이후 반년 동안 여성가족부–성평등가족부에서 일어난 일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둘째, 6개 스펙트럼 전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문제의 열쇠는 강한 정체성 그룹이 쥔 게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옆, 온건한 청년 그룹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이 다수의견에 합류하면 5대 1 구도가 되고 강한 합의가 이뤄진다. 반대로 이들이 강한 정체성 그룹에 합류하면 2대 4 구도라고 해도 청년끼리는 결집된 상태이므로 ‘2’의 저항이 강력한 교착상태로 간다. 비록 ‘2대 4’ 구도라도 청년 남성 혹은 여성이 뭉친 강한 반대를 뚫고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어렵다.
셋째, 정부가 개입해 한쪽의 우위를 다른 쪽으로 직접 옮기는 정책은 문제를 제로섬화할 위험이 있다. 목표를 바꾸라는 게 아니라, 추구하는 방법을 가능한 한 논제로섬화해야 한다. 여성을 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으로 유도하는 정책은 남성 차별이 아니다. 남성을 돌봄과 교육 전공으로 유도하는 정책은 여성 차별이 아니다. 군 경력에 보상하는 일 그 자체는 여성 차별이 아니다. 이것을 여성의 일자리 진입이나 커리어 전망을 봉쇄하는 식으로 설계하는 게 여성 차별이다. 군 가산점 제도는 이 요소가 강해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군 경력에 보상하면 여성 차별이라서 위헌이 난 게 아니다.
넷째, 애초에 논제로섬인 문제를 제로섬화하는 정책가도 있다. 없는 문제를 키우는 꼴이다. 한 성별에 대한 법적 보호나 사회경제적 지원을 다른 성별에 대한 차별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경력 단절 여성 지원을 남성 차별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 청년 남성의 자살이나 산업재해 문제를 돌보는 정책이 여성 차별이 될 수는 없다.
젠더 갈등은 운명이 아니다. 6개 스펙트럼 모델로 보면, 이들의 여론 조합은 사안의 성격마다 달라지고, 문제가 제시되는 방식에 따라 또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호에 본 〈그림 12〉로 다시 돌아간다. 한국인의 젠더 태도는 보이는 것만큼 갈등 지향적이지 않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평소에 ‘답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중 적지 않은 수가 합의 영역에 있을 터이다. 어느 한쪽의 명분이 우세한 ‘4대 2’ 구도가 많다. 이런 이슈를 정책가들이 더 논제로섬화하면 ‘5대 1’의 강한 합의를 만들 수 있다.
우리의 제안은 급진적 중도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노선이다. 왜 중도주의인가? 우리는 구조적 남성 차별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조사 응답자의 84%가 그렇듯이 말이다. 우리 조사 응답자 중 2030 남성의 77%가 그렇듯이 말이다. 이 주장을 내놓는 강한 정체성 남자들의 말을 잘 듣는다고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민주당 계열에서 잊을 만하면 나오는 ‘청년 남성 경청론’은 남자 말을 들어서 문제가 아니라, 다수 남자들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문제다. 개념 틀 없이 귀만 열면 다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게 된다.
또한 우리는 구조적 여성 차별 현실을 잘 교육하면 결국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남자들을 가르치자!” 접근법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문제를 해결할 전망이 없다. 청년 남성의 이념적 보수화는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먼저인가? 〈그림 13〉은 2019년과 2025년 조사에서 20대 남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주관적 이념 성향이다. 2019년에는 이념적 보수화 없이 젠더 강경 태도가 먼저 출현했다. 두 조사만으로 결론 내기는 무리이지만, 젠더의 강경 태도가 먼저고, 그 주장을 진보가 외면하고 보수가 수용하면서 이념적 보수화가 뒤따랐을 가능성이 있다. 2019년에는 젠더 태도만 있었다면, 지금은 젠더 태도와 이념 성향이 한 묶음이다. 더 단단해졌다.
이런 ‘밀어내기’는 청년을 넘어 기성세대 남성에게도 작동한 것 같다. 〈그림 14〉와 〈그림 15〉는 세대별로 페미니즘 지수를 표시했다. 페미니즘에 대해 0점이 중립이고, -12점이 가장 부정적, +12점이 가장 긍정적 태도다. 2019년에는 2030 남성이 페미니즘 이미지 악화를 주도했다. 지금은 40대 남성도 2030 남성과 큰 차이가 없다.
우리의 핵심 접근법은 이렇다. 여성과 남성이 서로 불리한 영역이 존재한다는 단순한 상식을 말하기. 온라인 반응이 어떻게 나오든 이 상식에 남녀 사이 폭넓은 합의가 있음을 강조하기. 구조적 남성 차별론과 이 상식적 온건론을 명확히 구분하고 분리하기. 의제를 포괄하지 말고 구체화하기. 논제로섬화하기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고립시키고, 남녀 상호 유불리론은 공론장에 초대하며, 포괄적 질문은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정책가들은 개별 사안을 따로 다루어,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구체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실용적 접근을 선호한다. 문제를 논제로섬화하여 여론 스펙트럼에서 최대 합의를 만들어내고, 그 문제부터 정책으로 풀어가기를 선호한다. 이래서 중도주의다.
중도적 접근법은 왜 급진적인가
그렇다면 왜 급진적인가. 이런 중도적 접근법이 결국 가장 큰 변화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은 승리할 수 없고,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도 없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반대편으로 밀어내어 교착상태를 강화하는 중이다. 급진성이란 “중도와 멀다”는 뜻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를 만들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서는 중도주의가 가장 급진적이다. 남자들이 말하는 “남성 차별”의 의미를 정확히 분별하는 데서 ‘중도’를 구성할 토대가 나온다.
우리는 7년째 이 문제를 다뤄왔기 때문에, 이 분석이 공개된 후 온라인에 등장할 반응을 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남자를 우쭈쭈하는 얘기는 지겹게 들었다. 이제 남자에게 책임을 물어라”라는 논평이, 또 한편에서는 “자기들 때나 있던 여성 차별을 지금 청년 남성에게 책임지라는 스윗 페미”라는 논평이 나올 것이다. 둘이 공존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책임 있는 정책가나 여론 형성자라면 ‘남자를 우쭈쭈하는 스윗 페미’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더 유효한 개념 틀을 가지고 ‘가장 큰 목소리’와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분별해내야 한다.
12·3 이후 한국 정치의 극우화 위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의 논지 전개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 연구진 중 한 명이면서 이 기사를 쓰는 나는 두 문제가 닮았다고 생각한다. 25% 내외의 강하게 결집된 정체성 그룹만 쳐다보면 안 된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그 옆에 있다. 잠재적 우군이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젠더 문제에서는 온건 남성 차별론의 청년 남성, 그리고 극우화 문제에서는 계엄을 지지하지 않는 보수 지지자들이 핵심이다. 이들이 강경파에 합류하느냐 분리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 두 문제를 다루면서 청년 남성 전체를, 보수 지지자 전체를 뭉치도록 만드는 반대 진영 스피커들과 정책가들이 있다. 이들은 실은 문제해결에 관심이 없다. 그렇게 들어 올린 깃발로 자기 진영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관심이 있다. 이들은 문제를 더 풀기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조연들이다.
7년 전에 우리는, 남성 역차별이 아니라 ‘남성 차별’ 개념이 새롭게 출현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구조적 남성 차별론을 주장하는 ‘강한 정체성 그룹’의 등장을 알렸다. 이번에 우리는, 이들이 말하는 ‘남성 차별’ 슬로건이 7년 동안 다수 남자들을 설득했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이 ‘남성 차별’ 슬로건이 남자들 사이에서 크게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중요한 차이를 드러냈다. 이 분별에 기반해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개념 틀을 구축할 때, 젠더 갈등 문제는 지금보다 덜 첨예하고 덜 중요해질 것이다. 반대로 이 분별을 계속해서 놓친다면, ‘남성 차별’ 슬로건에 대한 동의가 결국 ‘구조적 남성 차별론’과 뒤섞여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 길은, 전체는 물론 청년 남자 중에서도 소수인, 구조적 남성 차별론이 주류가 될 유일한 경로다.
우리는 이 결론이 현실을 오래 관찰한 결과이고, 객관적 근거로 뒷받침될 수 있으며,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책임 있는 태도라고 믿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 결론이 대단히 논쟁적일 거라는 점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번 더 밝혀둔다. 이것은 조사를 의뢰한 국민통합위원회의 공식 의견이 아니고, 조사를 기획하고 분석한 정한울과 천관율의 결론이다.
천관율 (언론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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