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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민재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지 5시간이 지난 15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은 시가지 전투가 막 끝난 모습과 흡사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전단이 찢어진 채로 바람에 나부꼈다. 곳곳에 부서진 폴리스라인이 넘어져 있었다.
음악과 구호가 비운 자리는 칼바람이 채웠다. 숨 가쁘게 무전을 주고받던 기동대원들은 웃으며 담뱃불을 붙였다. 간밤의 소동이 끝난 뒤 찾은 한남동은 존재보다는 부재가, 열기보다는 냉기가 두드러졌다.
새마을금고 자전거보험 부서진 폴리스라인, 찢어진 전단…"사람들 다 어디 갔나"
매일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던 국제루터교회 앞은 유난히 넓어 보였다. 길 양쪽에는 박종준 전 경호처장을 응원하는 화환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박 전 처장은 공조수사본부의 1차 영장 집행 시도를 철통 방어했다. 이후 돌연 사표를 내고 경찰 조사에 응했다.
지나 통신비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늦추며 화환을 바라보거나 어루만졌다. 오후 3시쯤 모자를 눌러쓴 중년 여성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그는 "사람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물었다. 이곳에서 열리던 집회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있는 과천으로 옮겨 열린다고 답했다.
그러자 "어머 그랬구나. 대통령님 거기(공수처) 들어가면 안 되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 금리계산기 대"라고 말하곤 급히 어디론가 전화했다. 전화를 끊고는 허탈한 표정으로 길거리에 놓인 화환 문구를 하나씩 훑었다. 화환에는 '박종준 처장님과 경호처 당신들이 대한민국입니다'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남대로의 10차로는 오랜만에 본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몇 주간 국제루터교회에서 일신빌딩까지 약 700m에 이르는 한남대로는 경찰버스와 집 금융 회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오후 5시 40분쯤 해가 지기 시작했다. 경광봉과 응원봉이 아닌 가로등 불빛이 한남대로를 밝혔다. 평소 교통체증이 심한 시간대였지만, 차들은 도로를 경쾌하게 내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15일 오후, 자전거를 탄 시민이 한 아주산업 남대로 육교 기둥에 붙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전단을 바라보고 있다.2025.01.15/뉴스1 ⓒ 뉴스1 김민재 기자


바람에 쓰러진 응원 문구들…기지개 켜는 한남동
공방은 끝났지만 대통령의 결사 항전 여파로 곳곳이 멍든 상태였다. 몇몇은 아직 상흔을 매만지고 있었다. 오후 4시 20분쯤 중절모를 쓰고 빨간 목도리를 두른 중년 남성이 한남초등학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한남초 방음벽에는 '윤석열 대통령 우리가 지킨다'는 문구가 한 글자씩 놓여 있었다.
글자 하나가 바람에 쓰러져 있었다. 남성은 팻말을 바로 세운 뒤 땅을 다져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그런 뒤 벌초하듯 정성스러운 손길로 근처 수풀을 다듬고 어루만졌다. 다른 손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들려 있었다. 그는 뒤로 물러서서 글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몇 걸음 걷고 멈춰 서서 응시하기를 반복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다음 날부터 매일 한남동을 찾았다는 류성호 씨(55)는 관저 정문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사흘 밤을 꼬박 새운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귀가 계획을 전했다.
류 씨는 외투 주머니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비스듬히 꽂은 채로 "피곤해서 오늘은 집에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의 뒤로 마지막까지 대통령 관저 정문을 가로막고 있던 버스가 빠져나갔다.
인근 자영업자와 주민은 한숨 돌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강진역 근처 편의점에서 수년간 일한 A 씨는 이날 오후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갑자기 조용해져서 깜짝 놀랐다. (조용해져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계산대 건너편에 서서 A 씨와 대화하던 인근 필라테스 업체 사장은 "시위 때문에 접근이 안 되니 수업 절반이 취소됐었다"며 "원래 이 동네는 이렇게 조용한데 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된 다음날인 1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한남초등학교에서 한 남성이 아이를 바래다주고 있다.2025.1.16/뉴스1 ⓒ 뉴스1 김민재 기자


체포 이튿날인 16일 오전 8시, 한남동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모자를 거꾸로 쓴 채 조깅하는 주민과 눈을 비비며 출근하는 직장인이 보였다. 대통령 관저 앞을 지키던 겹겹의 폴리스라인이 사라지고, 냉동 탑차가 검문소를 통과했다. 정문을 지나가던 기동대원들의 대화도 들렸다. "세상 조용하네, 세상 조용해"
아이의 방과후교실 등굣길은 통학 도우미 대신 가족이 함께했다. 오전 8시 5분쯤 중년 남성이 승용차에서 내리더니 뒷문을 열었다. 뒷좌석에선 상어 무늬 가방을 멘 남자아이가 내렸다.
아버지는 학교 정문의 '외부인 출입 금지' 팻말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아이의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아들은 들뜬 걸음으로 흙바닥을 가로질렀다. 교실 건물 앞에 다다르자 자신을 바래다준 아버지에게 손짓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minja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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