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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영빛차
등록일: 26-01-06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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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포해변, 이맘때면 벌교는 꼬막 천지다.
보성의 관문인 벌교읍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시장 곳곳에 쌓여 있는 꼬막 더미다. 겨울철 벌교를 대표하는 이 작은 조개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공기도 다르다.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갯내음이 콧속을 훅 치고 들어온다.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 대신 “벌교 가서 꼬막 자랑하지 말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읍내의 모든 식당과 시장 좌판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꼬막 자루들이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벌교 야마토게임예시 꼬막은 단순한 조개가 아니다. 그것은 여자만(汝自灣)의 차지고 고운 펄이 빚어낸 예술품이다. 꼬막의 세계에도 엄연한 계급이 있고 서열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반찬으로 접하는, 껍질에 털이 보송하고 골이 얕은 것은 ‘새꼬막’이다. 배를 타고 나가 그물로 걷어 올린다. 껍질 표면에 미세한 털이 있어 다소 투박한 외형을 지녔지만, 저렴한 가격 덕분에 대중적인 한국릴게임 사랑을 받는다.
벌교 꼬막타운
미식가들이 벌교까지 달려가는 진짜 이유는 ‘참꼬막’에 있다. 제사상에 반드시 오른다 하여 ‘제사 꼬막’이라 불리는 이 귀한 존재는 양식이 불가능하다. 오직 사람의 골드몽릴게임릴게임 손으로만 허락된다. 아낙들이 ‘널배’라고 불리는 뻘배에 한쪽 무릎을 꿇고, 다른 한 발로 갯벌을 밀어내며 채취한다.
참꼬막은 껍질이 두껍고 골이 선명하며 육질이 훨씬 쫄깃하다. 꼬막 눈(숨구멍)이 갯벌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 그렇게 4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우리 식탁에 오를 자격을 갖춘다. 그래서일까, 검증완료릴게임 참꼬막의 가격은 새꼬막의 다섯 배를 호가한다.
(위)꼬막회무침 (아래)꼬막탕수육
벌교 읍내의 식당들은 저마다의 비법으로 ‘꼬막 정식’을 내놓는다. 자리에 앉으면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실감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난다. 삶은 통꼬막부터 시작해 꼬막전, 꼬막무침, 꼬막탕수육, 꼬막된장국까지 그야말로 ‘꼬막의 변주곡’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는 기술이다. 꼬막은 너무 오래 삶으면 질겨지고, 덜 삶으면 비리다. 물이 끓어오를 때 꼬막을 넣고 한쪽 방향으로 저어주다가, 거품이 일며 입을 살짝 벌리려 할 때 건져내야 한다. 껍질 뒤쪽을 도구로 ‘탁’ 하고 까면, 탱글탱글한 살점과 함께 검붉은 핏물이 고여 있다. 남도 사람들은 이를 ‘초콜릿 물’이라 부른다. 입안에 넣으면 짭조름한 바다 향과 함께 쫄깃한 식감이 혀를 감는다. 별다른 양념 없이도 꽉 찬 감칠맛, 이것이 바로 겨울 벌교의 맛이다.
『태백산맥』 속 소화의 집을 재현했다.
태백산맥 문화거리
박제된 시간이 말을 걸다, 태백산맥 문학거리
벌교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실제 무대다. 배를 채우고 거리로 나서면 소설 속 문장들이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소설의 첫 문장이 시작되는 ‘태백산맥 문학거리’에서 여행자들은 문학 산책을 시작한다. 태백산맥 문학거리는 1940~50년대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보성여관’이다. 작중에서 빨치산 토벌대장 임만수가 머물렀던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이다.
다다미방과 카페를 갖춘 보성여관
193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판자로 마감된 외벽과 검은 함석지붕은 근현대사의 아픔과 생활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낡은 간판과 삐걱거리는 다다미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숙박과 카페를 겸하고 있다.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를 지나 다다미방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 소설 속 인물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1941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삼화목공소
여관을 나와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의 웅장한 건물이 눈에 띈다. ‘구 벌교금융조합’이다. 소설 속 금융조합장 송기묵이 최후를 맞이한 장소이자, 일제 수탈의 상징이었던 곳이다. 이 밖에도 1941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삼화목공소’ 등 거리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벌교에서의 산책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굴곡진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과 같다.
벌교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율포솔밭해변이 나타난다. 여름철에는 피서객으로 붐비지만, 겨울 해변은 산책하는 이들만의 조용한 낙원이 된다.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현대적인 조형물들과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풍경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특히 일몰 시간대, 섬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경험은 보성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율포해변
한옥에서의 하룻밤, 쉼의 미학
여정의 피로는 보성 문덕면의 한옥 ‘목임당’에서 푼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고택이다. 호텔의 매끄러운 편리함 대신, 조금은 투박하지만 깊이 있는 안락함이 이곳에 있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끼익’ 하는 나무 소리가 낯선 이를 반긴다. 잘 가꿔진 마당과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시골 풍경이 마음의 빗장을 푼다.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은 곡선의 미학을 보여준다. 나무가 가진 본연의 휨을 억지로 펴지 않고 집의 뼈대로 삼은 조상들의 지혜다. 방바닥은 뜨끈하다. 얇은 이불 하나 깔고 누우면 등허리로 전해지는 열기가 온몸의 긴장을 녹여낸다. 주방에는 주인장의 취향이 묻어나는 투박한 질그릇들이 놓여 있어 고택의 운치를 더한다.
(위,아래)한옥 고택 목임당의 그윽한 운치
밤이 되면 이곳은 완벽한 고요에 잠긴다. 들리는 것은 바람이 댓잎을 스치는 소리뿐. 툇마루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있던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100년 전 누군가도 이 자리에 앉아 같은 별을 보았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시간, 한옥 체험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초록빛 바다를 끓여내다, 장흥 매생이
보성에서 차를 몰아 장흥으로 넘어간다. 장흥의 바다는 보성과는 또 다른 색을 띤다. 득량만 안쪽, 장흥 내전마을 앞바다는 겨울이면 검푸른 빛 대신 짙은 초록빛으로 물든다. 바로 매생이 때문이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매생이는 천덕꾸러기였다. 김 양식장에 달라붙어 김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바다의 잡초’ 취급을 받았다. 김발에 매생이가 붙으면 어민들은 “망했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 해역에서만 자라는 매생이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이제는 김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겨울 바다의 귀족이 되었다.
(위)매생이국 (아래)내전마을 매생이밭
장흥 내전마을은 전국 최상급의 매생이를 생산한다. 이곳의 매생이는 올이 비단실처럼 가늘고 부드러우며, 특유의 단맛과 향이 강하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채취 시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봄까지 먹었지만, 이제는 12월부터 2월 중순이면 끝물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아니면 이 싱그러운 맛을 볼 수 없다. 매생이국은 ‘미운 사위에게 주는 국’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있다. 펄펄 끓여도 김이 잘 나지 않고, 촘촘한 섬유질 때문에 열기가 잘 식지 않아서다. 아무것도 모르고 급하게 한 숟가락 떴다가는 입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장흥 토박이들은 매생이국의 농도를 젓가락으로 가늠한다.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집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해야 제대로 된 매생이국이라는 것이다. 굴을 넣고 끓여낸 뜨끈한 국물 한 모금이면, 안도현 시인의 말마따나 ‘바닷가의 바람과 물결 소리’가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한우, 표고버섯, 관자로 구성된 장흥 삼합
산, 들, 바다의 맛있는 합주, 장흥 삼합
장흥에 왔다면 반드시 맛봐야 할 미식의 정점이 있다. 바로 ‘장흥 삼합’이다. 홍어를 곁들인 전라도 삼합과는 결이 다르다. 장흥의 기름진 땅에서 자란 한우, 득량만 갯벌이 키운 키조개 관자, 그리고 숲의 정기를 머금은 표고버섯이 그 주인공이다. 이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한 맛의 설계다.
불판 위에서 한우가 지글거리며 육즙을 뿜어내면, 그 기름을 표고버섯이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그 옆에서 살짝 익힌 관자는 부드러운 식감과 바다의 감칠맛을 더한다. 소고기의 고소함, 버섯의 쫄깃함과 향, 관자의 달큰함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진다. 산과 들, 바다가 한 입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이나 읍내 식당 어디를 가도 이 환상적인 삼합을 맛볼 수 있다.
장흥 굴구이
겨울 장흥의 또 다른 별미는 ‘굴구이’다. 관산읍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굴을 굽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비닐하우스들을 만난다. 장작불 위에 석화(껍질째 있는 굴)를 산처럼 쌓아놓고 구워 먹는다. 타닥, 탁! 껍질 튀는 소리가 경쾌하다. 장갑을 끼고 잘 익은 굴을 까먹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뽀얀 우윳빛의 굴은 바다를 농축해 놓은 듯 진하고 고소한 맛이다.
(위로부터)이청준 작가의 생가, 영화 ‘천년학’ 촬영지, 한승원 문학산책로
이야기의 숲, 문학의 바다를 거닐다
장흥은 문학의 토양이 유난히 비옥한 땅이다. 벌교에 주먹이 있었다면, 장흥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들을 무수히 배출했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묵직해지는 작가들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특히 소설가 이청준의 흔적은 장흥 곳곳에 서려 있다. 회진면 진목마을은 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한승원 문학산책로
단편 ‘눈길’에서 어머니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다섯 칸 겹집”은 비록 세월에 씻겨 소박한 모습으로 남았지만, 마당의 장독대와 툇마루에는 작가의 유년 시절이 겹쳐 보인다. 마을 앞 선학동은 영화 ‘천년학’의 촬영지다. 봄이면 유채꽃이 흐드러지지만, 겨울의 황량한 풍경 또한 소설 속 ‘선학동 나그네’의 고독과 닮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 역시 장흥이 낳은 문인이다. 그는 여전히 고향 바닷가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에서 글을 쓴다. 안양면 율산마을 앞바다에는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바다를 향해 난 길을 따라 그의 시비(詩碑)들이 서 있다. 겨울 바다의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시를 읽다 보면, 아버지 한승원에서 딸 한강으로 이어지는 문학적 유전자가 이 바다 어디쯤에서 기원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한승원 소설의 무대 회진
천년의 차가 건네는 위로와 보림사
여정의 마지막은 장흥의 깊은 숲이다. 가지산 자락에 안긴 보림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인도의 가지산, 중국의 가지산과 함께 ‘동양의 3보림(불법을 전하는 숲속 도량)’이라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고즈넉한 경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진짜 보물은 절 뒤편에 숨어 있다. 바로 비자나무 숲이다. 수령 300년이 넘는 비자나무 500여 그루가 울창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비자나무는 겨울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다.
청태전
숲길에 들어서면 바깥세상과는 다른 공기가 흐른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 내음이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산책로 사이사이에는 야생 차밭이 숨어 있다. 이곳에서 자란 찻잎으로 만든 것이 바로 ‘청태전(靑苔錢)’이다. 엽전 모양으로 빚어 발효시킨 차로,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비자나무 숲길을 걸으며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다.
보림사 대웅전
장흥 출신 이대흠 시인은 “장흥의 해안도로는 굽이마다 이야기가 맺혀 있다”고 했다. 보성과 장흥은 스쳐 지나가는 여행지가 아니다. 오래 씹어야 단맛이 나는 꼬막처럼, 천천히 읽어야 감동이 오는 소설처럼, 시간을 들여 머물러야 비로소 진면목을 보여주는 땅이다. 이 겨울, 빈손으로 떠나도 꽉 찬 위로를 안고 돌아올 수 있는 곳. 남도의 바람이 당신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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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꼬막정식 (아래)목임당
벌교의 꼬막식당으로는 거시기꼬막식당, 정가네원조꼬막회관, 장도웰빙꼬막정식 등이 유명하다. 한옥 고택 목임당은 문덕면에 있다.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장흥 읍내와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는 장흥삼합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정육점에서 한우를 사고 식당에 상차림 비용을 내면 된다. 만나숯불갈비가 유명하다. 장흥 토요시장에 있는 시골집은 푸짐한 백반으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관산읍 굴구이집은 사계절 굴구이를 추천한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2호(26.01.06) 기사입니다]
보성의 관문인 벌교읍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시장 곳곳에 쌓여 있는 꼬막 더미다. 겨울철 벌교를 대표하는 이 작은 조개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공기도 다르다.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갯내음이 콧속을 훅 치고 들어온다.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 대신 “벌교 가서 꼬막 자랑하지 말라”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읍내의 모든 식당과 시장 좌판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꼬막 자루들이 겨울이 왔음을 알린다.
벌교 야마토게임예시 꼬막은 단순한 조개가 아니다. 그것은 여자만(汝自灣)의 차지고 고운 펄이 빚어낸 예술품이다. 꼬막의 세계에도 엄연한 계급이 있고 서열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반찬으로 접하는, 껍질에 털이 보송하고 골이 얕은 것은 ‘새꼬막’이다. 배를 타고 나가 그물로 걷어 올린다. 껍질 표면에 미세한 털이 있어 다소 투박한 외형을 지녔지만, 저렴한 가격 덕분에 대중적인 한국릴게임 사랑을 받는다.
벌교 꼬막타운
미식가들이 벌교까지 달려가는 진짜 이유는 ‘참꼬막’에 있다. 제사상에 반드시 오른다 하여 ‘제사 꼬막’이라 불리는 이 귀한 존재는 양식이 불가능하다. 오직 사람의 골드몽릴게임릴게임 손으로만 허락된다. 아낙들이 ‘널배’라고 불리는 뻘배에 한쪽 무릎을 꿇고, 다른 한 발로 갯벌을 밀어내며 채취한다.
참꼬막은 껍질이 두껍고 골이 선명하며 육질이 훨씬 쫄깃하다. 꼬막 눈(숨구멍)이 갯벌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 그렇게 4년을 기다려야 비로소 우리 식탁에 오를 자격을 갖춘다. 그래서일까, 검증완료릴게임 참꼬막의 가격은 새꼬막의 다섯 배를 호가한다.
(위)꼬막회무침 (아래)꼬막탕수육
벌교 읍내의 식당들은 저마다의 비법으로 ‘꼬막 정식’을 내놓는다. 자리에 앉으면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실감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난다. 삶은 통꼬막부터 시작해 꼬막전, 꼬막무침, 꼬막탕수육, 꼬막된장국까지 그야말로 ‘꼬막의 변주곡’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는 기술이다. 꼬막은 너무 오래 삶으면 질겨지고, 덜 삶으면 비리다. 물이 끓어오를 때 꼬막을 넣고 한쪽 방향으로 저어주다가, 거품이 일며 입을 살짝 벌리려 할 때 건져내야 한다. 껍질 뒤쪽을 도구로 ‘탁’ 하고 까면, 탱글탱글한 살점과 함께 검붉은 핏물이 고여 있다. 남도 사람들은 이를 ‘초콜릿 물’이라 부른다. 입안에 넣으면 짭조름한 바다 향과 함께 쫄깃한 식감이 혀를 감는다. 별다른 양념 없이도 꽉 찬 감칠맛, 이것이 바로 겨울 벌교의 맛이다.
『태백산맥』 속 소화의 집을 재현했다.
태백산맥 문화거리
박제된 시간이 말을 걸다, 태백산맥 문학거리
벌교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실제 무대다. 배를 채우고 거리로 나서면 소설 속 문장들이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소설의 첫 문장이 시작되는 ‘태백산맥 문학거리’에서 여행자들은 문학 산책을 시작한다. 태백산맥 문학거리는 1940~50년대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보성여관’이다. 작중에서 빨치산 토벌대장 임만수가 머물렀던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이다.
다다미방과 카페를 갖춘 보성여관
193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판자로 마감된 외벽과 검은 함석지붕은 근현대사의 아픔과 생활상을 동시에 보여준다. 낡은 간판과 삐걱거리는 다다미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해 숙박과 카페를 겸하고 있다. 삐걱거리는 나무 복도를 지나 다다미방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면, 소설 속 인물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1941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삼화목공소
여관을 나와 걷다 보면 붉은 벽돌의 웅장한 건물이 눈에 띈다. ‘구 벌교금융조합’이다. 소설 속 금융조합장 송기묵이 최후를 맞이한 장소이자, 일제 수탈의 상징이었던 곳이다. 이 밖에도 1941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삼화목공소’ 등 거리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벌교에서의 산책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굴곡진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과 같다.
벌교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율포솔밭해변이 나타난다. 여름철에는 피서객으로 붐비지만, 겨울 해변은 산책하는 이들만의 조용한 낙원이 된다. 해안가를 따라 설치된 현대적인 조형물들과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풍경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특히 일몰 시간대, 섬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경험은 보성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힌다.
율포해변
한옥에서의 하룻밤, 쉼의 미학
여정의 피로는 보성 문덕면의 한옥 ‘목임당’에서 푼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고택이다. 호텔의 매끄러운 편리함 대신, 조금은 투박하지만 깊이 있는 안락함이 이곳에 있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끼익’ 하는 나무 소리가 낯선 이를 반긴다. 잘 가꿔진 마당과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시골 풍경이 마음의 빗장을 푼다.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천장은 곡선의 미학을 보여준다. 나무가 가진 본연의 휨을 억지로 펴지 않고 집의 뼈대로 삼은 조상들의 지혜다. 방바닥은 뜨끈하다. 얇은 이불 하나 깔고 누우면 등허리로 전해지는 열기가 온몸의 긴장을 녹여낸다. 주방에는 주인장의 취향이 묻어나는 투박한 질그릇들이 놓여 있어 고택의 운치를 더한다.
(위,아래)한옥 고택 목임당의 그윽한 운치
밤이 되면 이곳은 완벽한 고요에 잠긴다. 들리는 것은 바람이 댓잎을 스치는 소리뿐. 툇마루에 걸터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있던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인다. 100년 전 누군가도 이 자리에 앉아 같은 별을 보았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시간, 한옥 체험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초록빛 바다를 끓여내다, 장흥 매생이
보성에서 차를 몰아 장흥으로 넘어간다. 장흥의 바다는 보성과는 또 다른 색을 띤다. 득량만 안쪽, 장흥 내전마을 앞바다는 겨울이면 검푸른 빛 대신 짙은 초록빛으로 물든다. 바로 매생이 때문이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매생이는 천덕꾸러기였다. 김 양식장에 달라붙어 김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바다의 잡초’ 취급을 받았다. 김발에 매생이가 붙으면 어민들은 “망했다”며 혀를 찼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 해역에서만 자라는 매생이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이제는 김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겨울 바다의 귀족이 되었다.
(위)매생이국 (아래)내전마을 매생이밭
장흥 내전마을은 전국 최상급의 매생이를 생산한다. 이곳의 매생이는 올이 비단실처럼 가늘고 부드러우며, 특유의 단맛과 향이 강하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해 채취 시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봄까지 먹었지만, 이제는 12월부터 2월 중순이면 끝물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아니면 이 싱그러운 맛을 볼 수 없다. 매생이국은 ‘미운 사위에게 주는 국’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이 있다. 펄펄 끓여도 김이 잘 나지 않고, 촘촘한 섬유질 때문에 열기가 잘 식지 않아서다. 아무것도 모르고 급하게 한 숟가락 떴다가는 입천장을 데기 십상이다.
장흥 토박이들은 매생이국의 농도를 젓가락으로 가늠한다.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으로 집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해야 제대로 된 매생이국이라는 것이다. 굴을 넣고 끓여낸 뜨끈한 국물 한 모금이면, 안도현 시인의 말마따나 ‘바닷가의 바람과 물결 소리’가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한우, 표고버섯, 관자로 구성된 장흥 삼합
산, 들, 바다의 맛있는 합주, 장흥 삼합
장흥에 왔다면 반드시 맛봐야 할 미식의 정점이 있다. 바로 ‘장흥 삼합’이다. 홍어를 곁들인 전라도 삼합과는 결이 다르다. 장흥의 기름진 땅에서 자란 한우, 득량만 갯벌이 키운 키조개 관자, 그리고 숲의 정기를 머금은 표고버섯이 그 주인공이다. 이 조합은 그야말로 완벽한 맛의 설계다.
불판 위에서 한우가 지글거리며 육즙을 뿜어내면, 그 기름을 표고버섯이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그 옆에서 살짝 익힌 관자는 부드러운 식감과 바다의 감칠맛을 더한다. 소고기의 고소함, 버섯의 쫄깃함과 향, 관자의 달큰함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진다. 산과 들, 바다가 한 입에서 만나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이나 읍내 식당 어디를 가도 이 환상적인 삼합을 맛볼 수 있다.
장흥 굴구이
겨울 장흥의 또 다른 별미는 ‘굴구이’다. 관산읍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굴을 굽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비닐하우스들을 만난다. 장작불 위에 석화(껍질째 있는 굴)를 산처럼 쌓아놓고 구워 먹는다. 타닥, 탁! 껍질 튀는 소리가 경쾌하다. 장갑을 끼고 잘 익은 굴을 까먹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뽀얀 우윳빛의 굴은 바다를 농축해 놓은 듯 진하고 고소한 맛이다.
(위로부터)이청준 작가의 생가, 영화 ‘천년학’ 촬영지, 한승원 문학산책로
이야기의 숲, 문학의 바다를 거닐다
장흥은 문학의 토양이 유난히 비옥한 땅이다. 벌교에 주먹이 있었다면, 장흥 가서 글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들을 무수히 배출했다.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묵직해지는 작가들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특히 소설가 이청준의 흔적은 장흥 곳곳에 서려 있다. 회진면 진목마을은 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한승원 문학산책로
단편 ‘눈길’에서 어머니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다섯 칸 겹집”은 비록 세월에 씻겨 소박한 모습으로 남았지만, 마당의 장독대와 툇마루에는 작가의 유년 시절이 겹쳐 보인다. 마을 앞 선학동은 영화 ‘천년학’의 촬영지다. 봄이면 유채꽃이 흐드러지지만, 겨울의 황량한 풍경 또한 소설 속 ‘선학동 나그네’의 고독과 닮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 역시 장흥이 낳은 문인이다. 그는 여전히 고향 바닷가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에서 글을 쓴다. 안양면 율산마을 앞바다에는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바다를 향해 난 길을 따라 그의 시비(詩碑)들이 서 있다. 겨울 바다의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시를 읽다 보면, 아버지 한승원에서 딸 한강으로 이어지는 문학적 유전자가 이 바다 어디쯤에서 기원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한승원 소설의 무대 회진
천년의 차가 건네는 위로와 보림사
여정의 마지막은 장흥의 깊은 숲이다. 가지산 자락에 안긴 보림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인도의 가지산, 중국의 가지산과 함께 ‘동양의 3보림(불법을 전하는 숲속 도량)’이라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이다. 고즈넉한 경내를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진짜 보물은 절 뒤편에 숨어 있다. 바로 비자나무 숲이다. 수령 300년이 넘는 비자나무 500여 그루가 울창한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비자나무는 겨울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다.
청태전
숲길에 들어서면 바깥세상과는 다른 공기가 흐른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 내음이 폐부 깊숙이 들어온다. 산책로 사이사이에는 야생 차밭이 숨어 있다. 이곳에서 자란 찻잎으로 만든 것이 바로 ‘청태전(靑苔錢)’이다. 엽전 모양으로 빚어 발효시킨 차로,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비자나무 숲길을 걸으며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다.
보림사 대웅전
장흥 출신 이대흠 시인은 “장흥의 해안도로는 굽이마다 이야기가 맺혀 있다”고 했다. 보성과 장흥은 스쳐 지나가는 여행지가 아니다. 오래 씹어야 단맛이 나는 꼬막처럼, 천천히 읽어야 감동이 오는 소설처럼, 시간을 들여 머물러야 비로소 진면목을 보여주는 땅이다. 이 겨울, 빈손으로 떠나도 꽉 찬 위로를 안고 돌아올 수 있는 곳. 남도의 바람이 당신을 부르고 있다.
전남 여행 정보
(위)꼬막정식 (아래)목임당
벌교의 꼬막식당으로는 거시기꼬막식당, 정가네원조꼬막회관, 장도웰빙꼬막정식 등이 유명하다. 한옥 고택 목임당은 문덕면에 있다.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장흥 읍내와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는 장흥삼합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정육점에서 한우를 사고 식당에 상차림 비용을 내면 된다. 만나숯불갈비가 유명하다. 장흥 토요시장에 있는 시골집은 푸짐한 백반으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관산읍 굴구이집은 사계절 굴구이를 추천한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12호(26.01.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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